이재창 교수의 사회비평

▶ 나주의 저력으로 1,000년 계획을 세우자

  • 입력 2007.07.17 11:34
  • 기자명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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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창 나주대 교수
 이재창 나주대 교수
나주는 선사시대부터 우리의 조상들이 자리를 잡고 생활터전을 일구며 문화를 창조해왔다. 지금 남아있는 문화재를 통해서 볼 때 선사시대부터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으나 정확한 규모나 생활방식 등을 헤아릴 수 없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역사안으로 들어온 나주는 삼한시대 마한의 불미지국, 삼국시대 백제의 발라통의, 통일신라시대 금산금성이라 불렀고 후백제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나주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나주는 삼한시대나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그리고 후삼국 시대까지 한지역의 맹주를 자임해 왔으며 이를 기반으로 왕건의 고려개국을 도와 본격적인 중앙정치무대에 진입하였다.

고려시대인 983년(성종 2년)에 ·12목에 편입되었으며, 현종 원년에 12목에서 8목으로 축소 될 때도 당당히 목의 지위를 부여받아 조선시대 말인 1896년에 나주관찰부가 광주로 옮길 때까지 1,000여년 동안 나주는 한반도 정치중심에 있었다.

국보 295호로 지정된 찬란한 신촌리 금동관을 비롯한 국가지정 문화재를 살펴보면 보물11개, 사적 5개, 무형문화재 2개, 민속문화재 4개 그리고 2개의 등록문화재외 다량의 도지정문화재와 민속자료가 있다

나주지역 농산물의 생산량을 살펴보면 쌀을 비롯한 보리와 맥주보리 생산량이 많을 뿐 아니라 우수성이 입증되어 동강 드림 생미와 남평 왕건이 탐 낸 쌀이 적국 우수브랜드로 선발되었으며, 배를 비롯한 메론과 수박 등의 원예작물이 전국적인 명성과 높은 생산성을 확보하고 있고, 한우, 젖소, 돼지, 오리 등의 곡류와 원예 그리고 축산물이 풍부하고 탄탄한 농업기반을 갖추고 있다.

나주의 주요인물을 뽑자면 고려개국에 기여했던 장화황후와 그의 아들 혜종, 고려명신 정가신, 정지장군, 조선시대 한글창제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던 신숙주, 문필가인 임재, 거북선의 나대용, 조선의 명재상이라 불리웠던 박순, 김천일을 비롯한 의병장들, 독립운동가 김철과 나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들을 포함한 수많은 휼륭한 분들이 이 고장에서 태어나 고향을 빛낸 분들이다.

필자가 역사에 문외한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 저 책을 펼쳐서 주마간산격으로 나주의 역사를 요약을 해본 것은 우리의 위치와 자산을 인식함으로써 뿌리 없는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고 현 상황을 전환하자는 생각에서다.

지금 나주는 금동관과 금동신발을 만들어 최대 융성기를 보냈던 삼한시대 이후 또 한번의 융성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남광주 공동혁신도시 유치, 영산강 고대 문화박물관 그리고 나주역사문화도시 건설이라는 거대 계획을 추진하면서 제2의 번영의 기틀을 마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회를 기회로 생각하지 않고 내부의 문제들에 너무도 긴 시간 집착하면서 외부로는 이미지가 실추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한여름 지리한 장마처럼 지속되고 있다.

옛말에 하인이 자기가 모시는 정승 높은 줄 모르고 성인군자가 자기 고향에서 존경받은 적이 없다는 말처럼 우리 고향의 역사와 문화가 존귀하고 위대해 보이지 않을지라도 필자처럼 몇권의 책을 펼쳐보면 우리고향의 가치를 재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훈민정음 서문을 빌리지 않더라도 나주의 정체성은 지금의 시련쯤은 능히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나주의 어르신들을 어떻게 모시고 이를 산업화할 수 있는 노령친화사업구상, FTA(자유무역협정)에 따른 나주의 농업문제를 해결하여 농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농업이 회생함으로써 나주경제가 회생하는 순환구조, 혁신도시가 특정지역만의 축제가 아닌 나주 시민 모두의 혜택이 될 수 있는 방안 그리고 공공 기관들이 사용할 수 있는 인재를 공급하기 위한 교육정책 등에 대하여 시민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나주 미래 1,000년의 청사진을 그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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