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성 주부의 세상보기

▶ 풀과의 전쟁

  • 입력 2007.07.28 12:20
  • 기자명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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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호사하는 요즈음이다. 논둑, 밭둑, 하늘, 들판 모두가 눈을 시원하게 하는 푸른색들이다. 허리 한 번 편하게 세워보지 못하고 열심히 일한 농부의 봄날 덕분에 세상은 그야말로 평화를 노래하는 초록 세상이다.

그런데 그 초록 세상 속에서는 농부와의 한판 승부가 이곳저곳에서 끝도 없이 이어진다.  새벽 찬이슬 밟으며 노련한 솜씨의 손놀림, 낫질과 예취기의 칼날은 덥수룩한 수염의 논둑을 말끔히 밀어 놓았고 노란 물신 신고 들어간 논에서는 허리 쯤 오는 벼 포기 사이에서 피를 찾아낸다. 허리 굽고, 거칠어진 손이 몰아 쥔 잡초들은 콩 밭에서, 고추밭에서 뽑혀진다. 

콧등으로, 등짝으로 땀이 흘러내려도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 저 풀들, 그 것들이 농부의 여름날을 채울 것이다.

지난 봄 나는 고추를 심으며 고추밭 고랑에 제초제를 뿌리는 대신 보리 짚을 두껍게 깔았다. 풀이 나는 것을 막아 보려는 의도였는데 풀은 어김없이 그 끈질긴 생명력으로 싹을 틔우고 우거졌다. 이제까지 다섯 차례 풀을 뽑았지만 풀은 또 자라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마을 아주머니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신다. “제초제가 없다면 농사를 어떻게 지을까? 풀이 풀이 감당을 못하겠다니께.” 

농사를 짓고 있는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는 날로 날로 농사일을 힘에 부쳐하는 나이가 되어 버렸고, 그 나마 조금 있는 젊은 농군들은 광작의 농사로 농약에 의존하는 농사를 짓고 있으니 농약의 선택, 이것은 선택 아닌 선택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 조금이라도 굵은 비가 내릴라 치면 논둑이 무너지고, 밭 흙이 빗물에 끝도 없이 흘러내린다. 갑자기 내리는 빗물을 잡아줄 풀들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새 내성이 생겨버린 땅은 약을 조금 더 독하게 타야 풀이 나지 않을 것이라며 농부마음에 강박 관념을 주어 점점 독한 약을 흙 위에 뿌려댄다. 

언제부터인가 수입개방 반대를 외치는 농부에게 정부는 경쟁력, 고품질 운운하며 친환경 농사만이 살길이라고 그 동안의 농법을 버리라며 모든 책임을 농부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텔레비전 곳곳에선 웰빙 바람을 타고 무농약을 노래한다. 모두 말만 앞서는 자들의 외침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불어 삶의 우리 농부에겐 환경을 지켜내는 농사, 흙을 살리고, 물을 살리는 농사 방법이 선택되어야 한다. 자연에 감사할 줄 알고, 자연을 닮은 농부의 당연한 선택인 것이다. 그런데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그 속에는 끝도 없는 나와의 싸움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나의 땀과의 싸움, 나의 시간과의 싸움, 편해지고 싶은 나의 게으름과의 끝도 없는 싸움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달리는 차 창밖으로 펼쳐지는 다랑치 논들의 향연, 어쩌면 아직도 저런 논들이 있을까 싶은데, 말끔히 손질된 논둑을 보며 또 하나의 세상살이 법칙을 읽어낸다. 가난한 저들의 삶이 친환경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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