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용의 생활정치

▶ 로자 룩셈브루크를 생각하며

  • 입력 2008.03.16 16:07
  • 기자명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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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일면서 나온 얘기가 생각난다. 진보적 가치를 인정하여 진보정당후보에 투표할 것인가, 아니면 보수세력의 집권을 저지하기 위한 현실적 판단으로 여당후보를 지지할 것인가가 한창 논쟁거리가 될 시기였다.

누군가 로자 룩셈부르크의 말을 인용했다.

‘진보정당은 단 한번도 집권가능성이 있는 선거에 임한적이 없다. 그러나 진보적 가치가 현실에서 요구되는 한 우리는 도전해야만 한다.’라는 말이었다. 우리는 항상 현실의 벽에 부닥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정치적 판단이든, 경제적 삶의 판단이든, 또 아니면 소소한 일상의 거리마다에서 늘 현실적 판단과 이상적 판단의 저울앞에 놓여지곤 한다. 대부분 우리는 현실의 무게감을 인정하고 현실적 선택을 하게 된다.

그렇게 쌓여진 삶의 경험을 연륜이라 높여 이야기하고 우리가 선택하지 못한 길에 대해 현실을 무시한 이상, 이상주의라고 애써 폄하하며 살아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상주의자였다. 19세기말 20세기초 유럽대륙은 혁명의 시절을 보내고 있었고 부유한 상인의 딸로 태어난 로자는 선천적인 장애를 갖고 있었던 여성혁명가였다.

불꽃같은 삶을 살아간 그녀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1918년 검거되어 갖은 고문을 받고 학살되어 시체가 독일운하에 버려지게 된다. 끔직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패배한 그녀의 삶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그녀는 용감했고 도전적이었다.

항상 용기는 뻔히 질 수밖에 없는 싸움에 나서는데 있다고 본다. 그래서 현실의 변화는 늘 무수히 많은 패배를 밑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져왔다.

2008년 우리는 높고 두터운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주변과 새로운 희망을 쌓아가기 위해 분투하는 치열한 현실이다. 지난해 대선에서 선택의 고뇌를 다시 한번 곱씹어야 할 현실이 다가오고 있다.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진보적 가치나 명분은 너무 호화스러운 말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삶에 설득력을 갖고 함께 호흡하지 않으면 진보적 가치는 영원히 빛나기만하는 가치로만 머물게 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직 준비되지 못했다고, 함께 호흡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서 닥쳐온 싸움을 회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늘 현실은 우리의 준비를 인정해 주지 않았고 현실을 바꿔보려는 시도는 늘 완벽한 준비후에 진행된 사례가 없었다.

전봉준의 죽창과 유관순의 태극기, 그리고 80년 윤상원이 전남도청 창가에서 마지막 피워물었던 담배 한 가치가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이 아니라 끝내는 승리해야 한다는 신념의 상징이었음을 굳게 믿는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죽은지 90년이 되는 올해 나주에서는 우리가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지 사뭇 결과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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