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를 빛내는 문화재를 찾아서

-국가지정문화재 ⑥ -

  • 입력 2008.05.12 15:12
  • 기자명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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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현종이 몽진했던 심향사(尋香寺)

1984년 2월 전남문화재자료 제88호로 지정된 심향사는 신라시대에 원효대사가 미륵원이라는 이름으로 세운 절이다.

언제부터 심향사로 이름이 바뀌었는지 알 수 없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신왕사로 기록하고 있고, 미륵전 건물에서 발견한 기록에 따르면 정조 13년(1789년) 무렵까지는신황사로 불렸던 듯하다.

고려 현종 2년(1011년)에 거란군이 침입하자 현종은 나주로 몽진하여 나라의 평안을 위해 기도를 올렸다고 전하는데신황사神皇寺라는 이름에서 황제 황(皇)자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임금이 이 절의 대법회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으로 나라를 다시 찾은 현종은 부처님의 힘이 아니고는 나라를 지킬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강화도에 간경도감을 설치하였는데 이는 고려 초조대장경을 조각하게 된 모체가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심향(尋香)은 건달파(建達婆)라는 신장의 이름으로 풍류를 즐기고 불법을 외호하는 신(神)인데 번역하면 심향이라 하며 조선조 호국의 대표적인 명칭이다.

보물 제1544호 건칠아미타여래좌상(乾漆阿彌陀如來坐像)

지난 3월 12일 보물로 지정된 건칠아미타여래좌상은 특히 고려말과 조선초에 많이 조성된 건칠불상 중 하나이며, 점토나 석고로 만든 원형을 제거한 탈활(脫活)건칠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고려후기 불상의 특징인 이국적이면서도 단엄한 얼굴표정을 지니고 있으며, 왼쪽 어깨에 부채살처럼 흘러내린 세밀한 잔주름은 13세기 후반에 조성된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1276년), 화성 봉림사 목조아미타불좌상(1362년 이전) 등에서도 확인되는 공통된 특징이다.

우리 지역에서는 이 불상 외에도 불회사와 죽림사 등 여말선초에 건칠불이 전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조형적 완성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더욱이 이 불상은 현재 알려진 건칠불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하는 작품의 하나로 중요성을 지닌다.

전해내려오는  이야기

한편, 심향사에는 기도 중 자연발화 된 관세음보살상이 유명한데 20여년 전 공야주로 살던 보살의 어머니가 몸이 아파서 관음보살상 앞에서 일심으로 기도를 드렸다.

기도를 드리던 중 어느 날 관세음보살상에서 갑자기 발화가 일어났다. 그 순간 기도를 드리던 불자의 몸은 불에 휩싸인 듯이 뜨겁게 달아오르더니 어머니의 병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에 스님들이 황급히 법당에 올라와 확인해 보니 어찌된 일인지 관세음보살상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고 그림처럼 보살님을 모신 나무단만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는 것.

이에 그 보살은 은혜로운 부처님을 섬기기 위해 출가를 하였다고. 지금도 관세음보살상을 모신 단은 까만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또한, 심향사 미륵전 안에 있는 미륵원석의 명칭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미륵전 미륵부처님을 조성한 돌로 만들어졌다는 의미와 미륵부처님께 원력, 즉 소망을 바라며 기도를 드린다는 의미가 있다.

심향사를 찾는 많은 보살들이 아기를 갖기 위해 미륵원석을 돌리며 정성껏 기도를 드렸다고 전해진다.

원석을 돌리거나 밀고 당기면서 기도를 하는데 어느 순간 미륵원석이 아무리 해도 움직이지 않게 되면 기도가 성취된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 오고 있다.

이 밖에도 심향사 경내에는 보물 50호 북문밖 삼층석탑이 있다.            

/이영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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