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대운하의 정책취소를 반기며

▶ 동신대 이정호 교수

  • 입력 2008.06.20 16:00
  • 기자명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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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월, 나주 송월동 일대를 스치듯 흐르는 영산강 모래톱에서 고대 목선 조각이 발견되었다. 조각의 크기로 가늠해 볼 때, 원래 이 배는 길이가 40m 안팎으로 대형 선체였음이 밝혀졌다. 이전에 발견되었던 동시대의 완도 고려 배에 비해 4배 가량 큰 규모이고 국내에서 발견된 고대 목선 가운데에서 가장 큰 배이다.

그 즈음, 또 다른 영산강 주변에서는 토사를 준설·채취하다가 생각지 못한 유물이 발견되었다. 한국에서 삼국시대가 시작되던 기원전후 시기의 토기(土器)였다. 무려 이천년 세월이 흘렀음에도 완벽하게 제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처럼 강바닥에서 고대 유물이 출토되는 이유는 다시면 복암리고분과 주변일대의 유적을 보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복암리고분(사적404호)에서는 40기가 넘는 무덤과 수 백점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 무덤 속에서 출토된 옹관묘와 무덤 부장용 토기유물들 중에는 오량동토기가마유적(사적 456호)에서 만들어지고 강 건너 운반되어 온 것들도 상당 수 확인되었다. 영산강 뱃길을 통해 유물을 운반한 것이다.

이처럼 영산강이 뱃길로 이용되는 동안 이 길을 지나던 산물들 중에는 미처 목적지에 당도하지 못하고 어떤 연유로 강바닥에 수장된 것들도 상당 수 있을 것이다. 강바닥 모래 속에 잠겨 있다가 모습을 드러낸 고대 선박과 기원전후의 토기가 그것이다.

1408년, 전라도수영(全羅道水營)이 영산강 대굴포에 설치되면서 대선 8척 중선 16척 수군 1,895명, 뱃사공 21명이 편제되었다는 세종실록의 내용과 함께 다시면 죽산리 전선소(수군기고)와 무안 이산리 전선창(선소창) 등 유적이 확인되었고 또한 영산강을 따라 각 지에 고대 나루터와 선소유적(선박 제작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영산강 곳곳의 문화유산들이 우리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영산강은 단순히 강이 아닌 역사 그 자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영산강은 역사 그 자체이다’ 이 말은 추상적, 구호성 표어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영산강은 여타의 강과 달리 흐르는 물의 양이 매우 적고 그 흐름도 약하다. 심지어 뱃길 운행을 위해서는 바다물의 간만차를 이용해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강바닥의 토양은 침식되지 않고 켜켜이 쌓였으며 그 토양 속에 우리의 역사문화적 산물, 즉 문화유산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바다로 쓸려 나가지 못한 채 강바닥 지층 속에 묻혀 있던 문화유산은 간혹 급격한 홍수나 인위적인 공사 중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6월 20일,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통해 대운하를 취소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새정부는 한반도 대운하 정책에 대한 경제적 가치를 설명해 왔고 또한 비판적으로 이에 반론하는 여러 얘기들도 들어 왔다.

그러나 열심히 듣고 또 읽고만 있을 뿐 필자의 역량으로는 그 결과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대운하로 인해 야기 될 문화유산의 보존문제를 떠올리면 이 정책은 내게 무거운 난제이고 또한 심한 당혹감을 느끼는 문제였다. 영산강을 따라 산재한 문화유산 뿐 만 아니라 강바닥에 고스란히 묻혀 있을지 모를 수많은 문화재를 어떻게 보존하고 어떻게 구해 내야할까?

쉬운 계산으로도 이러한 문화재를 발굴조사하여 기록으로나마 보존하기 위해서는 수 천억원의 예산과 수 십년의 조사기간이 필요하다는 답이 나온다. 영산강운하만 볼 때 현재 활동 중인 7~80여명의 지역 연구조사인력이 모두 매달려도 천억에 가까운 예산과 오랜 조사기간이 필요하게 된다. 더구나 영산강의 특성상 거쳐야 할 정밀 수중조사를 제외한 예상이다.

결국 이 정부 임기 내에 대운하의 완공하기 위해서는 문화재를 파괴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에 대운하사업이 ‘반(反)문화적’인 정책의 전형이라고 시민과 학계에서 질타해 왔다.

필자에게 이번 대운하에 대한 중지 결단은 반가운 소식이 되었다. 이 결정으로 인해 공약(公約)을 공약(空約)으로 끝나게 하고 말았다는 아쉬움이 남을 수 있으나, 이를 계기로 삼고 더 나아가 친국민, 친문화, 친환경적 정부로의 정책 전환을 더해 준다면 이 정부야 말로 후대의 역사에 기록되는 ‘선진화를 이끈 정부’가 될 것이라 감히 자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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