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가꾸기 사업 어떻게 해야하는가 ③

▶ 무조건 남의 것을 따라하지 않는 고집불통

  • 입력 2008.10.27 16:36
  • 기자명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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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이 숨쉬는 마을' 경북 고령 개실마을

   개실마을은 조선시대 무오사화로 부관참시를 당한 점필재 김종직선생의 후손들이 터를 닦아 집성촌을 이룬 마을이다. 나비가 춤을 추는 모양을 한 접무봉을 바라보며 화개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 앞에는 정겨운 개울이 흐르고 박목월의 나그네가 생각나는 우리동네 그 모습이다.

 문화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영계씨는“실제 동네이름은 꽃이 핀다고 해서 개화실이라고 불렸다. 또는 아름다울 가자를 써 가곡(嘉谷)으로 불리기도 한다"며 마을의 유래를 설명한다.

 마을입구에는 5대에 걸쳐 행한 효행비가 교훈을 주고 있다. 어머니가 병환으로 한겨울에 굉산적을 바라자 꿩이 스스로 날아들었고 잉어회를 먹고 싶다는 뜻을 나타내자 연못에서 잉어가 튀어나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예절과 효행이 남다른 마을이라고 이야기한다. 개실마을은 전통한옥마을이다. 토담으로 둘러싸인 옛 기와집이 정겨움을 안겨주고 있다. 다른 마을과 달리 깐깐한 양반의 전통을 자손들이 대대로 지켜가며 살아온 마을이어서 농촌팜스테이 테마를 예절과 효로 삼고 있다.

 본관이 선산(善山)인 집성촌으로 살다보니 모든 대소사를 전체주민이 참여하여 결정하고 운영한다. 종손이 위원장(김병식 개실마을발전위원장)을 맡아 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개실마을이 전통농촌체험 마을로 거듭나기 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동네사람 가운데 참여하지 않으면서 비판적인 눈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다. 양반의 전통이 살아 숨 쉬고 있던 터라 옛 것을 버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양반가문의 전통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우리 것을 이어가자는 개방의 물결로 더욱더 살맛나는 마을로 만들어간 것이다. 전통한옥 내부를 개조하고 민박을 통해 생기는 수익은 동네기금으로 적립해 공동사업에 사용하고 있다. 민박을 하는 집에는 나무로 만든 문패(간판)가 있다. 먹골댁, 개편댁 등 우리에게 정겹고 익숙한 이름이다.

 개실마을은 거의 대부분이 한옥이다. 옛날 자치기, 제기차기, 연날기, 떡메치기, 엿 만들기, 한과, 뗏목타기, 짚멍석짜기, 압화만들기 등 전통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마을의 자원을 철저하게 이용하고 다른 마을과 달리 전통 민속으로 체험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차별화로 성공한 케이스이다. 한옥을 보수하여 7첩반상계를 재현하고 전통혼례식도 치룬다.

 이날 가족나들이를 한 박상희씨 부부는 엿 만들기 체험을 했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참여해 시종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옛날 동네에서 사먹던 엿맛이 그대로 납니다. 인스턴트 식품에 길들여진 아이들과 우리 전통의 과자를 함께 만드니 너무 즐거워요"라는 박씨의 얼굴엔 동심이 가득했다.

 김영계씨는“개실마을은 옛날 양반풍속을 그대로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종가집을 잘 모시고 양반이 했던 그대로 한다. 우리의 전통을 살려 도시민에게 우리 것을 사랑하도록 하는 것이 개실마을의 특징이다."며 자랑이 대단하다.

 개실마을 가꾸기의 가장 큰 특징은 마을에 맞는 것만 한다. 다른 마을이 한다고 해서 따라가지 않는다. 또한, 마을의 자원을 모두 활용한다. 도자기를 전공한 사람이 있어 도예체험장을 열었다. 마을의 인적자원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다. 전국소싸움협회장이 있어 싸움소가 몇 마리 있는데 소에 사람을 태워 마을을 돌아본다. 모든 자원을 활용하여 마을가꾸기에 동네사람들이 참여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원칙은 있다. 바로 마을의 전통을 이어가고 우리의 민속풍속만 고집한다. 양반의 체통을 이어가고자 하는 고집불통이 오늘의 개실마을을 있게 한 근간이다.

 그렇다고 있는 것만 보여주지 않는다. 전국의 유명한 마을은 다 찾아다니면서 배운다. 마을주민들은 농촌벤처대학도 다니고 농업관광대학도 졸업했다. 그만큼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면서 마을에 맞는 것을 찾아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다.
 

마을주민의 힘으로 이끌어 낸 으뜸마을 만들기  

 1996년 용담댐이 건설되면서 5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전북진안군 와룡마을은 물에 잠겼다. 마을이 사라져버린 아픔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지만 새로운 마을로 이주한 주민들은 다시 와룡마을을 가꾸었다. 마을공동체 정신이 살맛나는 농촌을 만든 것이다. 11가구의 주민들이 모여 새로운 동네를 만들어 지금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천문대를 가진 동네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오늘의 와룡마을이 있기까지는 강주현 으뜸마을가꾸기추진위원장의 공이 크다. 남다른 헌신성으로 수몰의 아픔을 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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