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야채장사로 삶을 꾸려온 할머니

2009년 희망 찾기- 사람이 희망이다③

  • 입력 2009.03.02 19:26
  • 기자명 김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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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어렵다고 한다. 하나 둘 문을 닫는 상점들. 자물쇠가 굳게 걸어진 폐쇄된 공장. 구조조정에 시달리는 회사원. 내년까지 불황이라고 떠들어대는 매스컴. 어느 곳 하나 희망을 얘기하는 곳이 없다.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어디에서 찾아야할까. 바로 사람이다. 일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나주신문에서는 오늘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희망의 내일을 '일하는 사람'에게서 찾고자 한다.  우리 주위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로부터 2009년 희망찾기가 시작된다.                                                                      -편집자주-

▲ 김문순 씨가 나주 5일시장에서 야채를 손질하고 있다
▲ 김문순 씨가 나주 5일시장에서 야채를 손질하고 있다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식만 바라보고 살았는데 지가 무슨 신문에 날 일을 했다고 그러십니까"
나주 5일시장에서 35년째 야채를 팔면서 살아온 김문순씨.
 
상점도 없이 노상에서 시금치, 무, 배추 등 야채를 팔고 있다.
 
취재를 극구 사양하는 김문순씨에게 무슨 말을 해서 인터뷰를 할까 많은 고민이 왔다 갔다.
2009희망찾기를 시작하면서 사람이 희망이다를 기획했지만 김 씨의 삶은 우리네 일상의 모습 그대로였기에 고민이 더욱 컸다.

그러나 김씨를 추천한 독자는 그 험한 역경을 딛고 일어선 모습이 우리에게 희망이 아니냐는 반문을 해왔다.
 
다시 설득한 끝에 인터뷰를 시작한 김씨는 죽림동 출신의 나주 토박이다.
 
남이 보기엔 선천성 왜소증 장애우로 보인다. 하지만 김씨는 선천성 왜소증을 앓고 있는 장애우가 아니다. 그가 왜소증 장애우가 된 것은 민족상잔의 아픔 때문이다. 1950년 에 발발한 민족의 비극 6.25때 허리가 꺾여 1m5㎝도 안되는 작은 키로 세상을 헤쳐 나왔다.
 
김씨도 한 때는 단란한 가정을 꾸리면서 남편의 사랑을 받으며 살았다. 어려운 생활이었지만 두 아들 그리고 어여쁜 딸과 함께 희망을 가슴에 안고 밝은 미래를 꿈꾸었다. 그런데 노동일을 하면서 성실히 살아온 남편 배씨가 갑자기 건강을 잃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만 탓할 수 없어 장사를 시작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살아야 했기에 시장통으로 나선 것이다.

김씨의 희망인 두 아들과 딸을 굶길 수 없었다. 공부도 시켜야겠다는 일념에 그는 험한 세상과 맞서는 용기를 내었다.
 
왜소증 장애우라 모든 것이 힘들었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힘이 솟았다. 야채장사로만 생계를 꾸릴 수 없어 아무 일이나 닥치는 대로 했다. 과수원, 밭일, 폐지줍기 등 안해본 일이 없이 다했다. 작지만 조그마한 집도 생겼다.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고교를 졸업하고 시집가고 둘째는 대학도 졸업해 어엿한 직장을 다닌다.
 
3살때까지 행복한 가정의 귀여움을 독차지한 김씨의 고통은 바로 전쟁이 가져다주었다. 언니 등에 엎여 전쟁공습을 피하다 허리가 꺽인 것이다.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병원에도 갈 수 없는 상황이 김씨를 영원히 장애우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평범한 삶을 꿈꾸던 김씨의 삶은 남편의 죽음으로 가장이 되어 세상 풍파를 헤쳐야 하는 짐이 되어버린 것이다.
 
김씨는 하루에 4~5만원 어치의 야채를 판다. 그래도 그녀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다. 아니 웃음을 간직하려고 애쓴다. 고생스럽다는 표현도 잘 하지 않는다. 오직 자식하나만 믿고 살아온 세상이기에 그녀의 삶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좋은 기억만 떠올리려고 애쓰는 그녀의 모습은 안타깝기조차 할 정도다.
 
그래도 김씨는 "손님들이 많다. 제가 안스러워 그런지 자주 찾아주는 단골도 많다. 욕심부리지 않고 살려고했다. 어차피 욕심부릴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자식들 만큼은 남들보다 좋게 키우고 싶었다" 며 눈시울을 붉힌다.
 
아들이 효자라며 아들 칭찬만 한다. 전에 다녔던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놀고 있어 걱정이란다.
요즈음엔 두 손녀딸의 재롱을 보면서 다시 또 이를 악물며 몸이 불편한 고통의 아픔을 이겨낸단다.
 
그녀의 삶은 보통 우리 선배들이 살아온 삶과 별반 차이가 없을 듯 하다. 하지만 김씨의 신체조건은 우리사회에서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는 시각에 이중삼중의 어려움이 따른다.
 
김씨는 그 고통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희망을 찾아 어려움을 이겨냈다. 아니 아직도 그 고통과 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불어온 경제한파가 모두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실직과 실업의 고통, 사업이 부진 등 모든 것이 어려운 여건이지만 김씨처럼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장이 시작한 시점이라 그런지 김씨의 야채들은 아직도 많이 쌓여 있었다. 모든 야채가 팔려야 김씨의 얼굴도 밝아질 텐데 하면서 작은 상점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말은 않지만 김씨의 작은 소망은 5일시장내에 작은 가게하나쯤 마련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하면서 시장통을 나왔다.                   
 
내일은  밭일을 나가야 한다는 김씨는 고맙다면서    웃음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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