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사는 것과 못사는 것

  • 입력 2009.03.08 22:48
  • 기자명 홍기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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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일 KBS 뉴스에 김정연 (93세) 할머니와 배복동(92세)할머니, 박부자 (85세)할머니의 따뜻한 이야기가 나왔다.

김정연 할머니는 자신이 모아놓은 1,500만원과 전세금을 합한 2,300만원을, 배복동 할머니는 전세금 900만원, 박부자 할머니 역시 자신이 살고 있는 전세금 500만원을 이웃을 위해 기부했다는 소식은 우리 사는 세상을 다시 한 번 돌이켜 보도록 했다.

세 분 모두 기초생활 수급자로 생활하고 있다. 가정 사정은 자세히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름다운 일이다. 어쩌면 우리 사는 세상에서 제일 잘 사는 분들이 아닌가?

요사이 조금 잠잠 하지만 군포의 강호순 사건은 쌓아 두고 더 많이 챙겨서 자신의 영달을 위해 쓰려고 하는데서 생겨난 사건이라고 본다.

우리나라 최고의 승용차를 타고 다니면서 낮에는 호의호식하고 밤에는 환락가를 다니며 어려움 없이 생활한 것을 보면 이 사람은 분명 잘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주위를 봤을 때 강씨처럼은 아니지만 가끔 자신의 욕심을 채워 가는데 만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혹 자신의 노력으로 부를 이룬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 사람의 씀씀이를 봤을 때 기부나 헌신보다는 자신의 욕심에 눈이 어두운 사람으로 보인다.

이것은 분명 잘못 사는 것이 분명하다

위에 거론한 할머니들의 생활을 봤을 때 주거환경이 허술한 생활공간 속에서 수급비로 살고 있다. 물론 노동의 능력이나 돈 벌이를 하는 분들도 아니다. 오직 자기에게 배당된 생활비를 아끼고 아껴서 모은 재산 일 것이다.

이러한 재산을 기꺼이 사회에 희사 했다는 것은 정말로 잘 사시는 분들이다. 그런데 사회적 시각은 외형적인 기준으로 상을 주고 관심을 두니 우리 사회는 허황되게 성장 할 수밖에 없다. 공부도 그렇다. 어떻게 하면 석차를 높일 것인가에 기준을 두니 학력고사 성적도 조작이 되고 이 평가로 그 단체의 장에게 평가점수를 올리는 사회풍토는 거짓과 오만과 아부와 허위로 얼룩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탈출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흔들리지 않는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가 이러한 겉 치례로 가득 찬다면 진실을 찾기 어렵다. BC 2세기 때 희랍의 철학자 디오게네스처럼 등불을 들고 로마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잘사는 기준은 GNP의 높은 액수가 아니라 백결선생의 근엄한 모습으로 가야금을 울리는 삶의 만족에 있을 것이다.

우리의 교육도 마찬가지로 점수보다는 계란을 품는 에디슨의 창의성으로 평가 할 수 있는 교육 풍토로 바꾸어야 한다.

좋은 차 좋은 집으로 사람을 평가하니 옆에 있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서 자신의 욕구를 채워가는 강씨와 같은 사건은 없어야 하겠다.

교육에서도 창의성 있는 방향으로 바꾸어지는 사회와 전통가옥 초가집에서도 웃음과 행복이 넘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시민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눈보라 몰아치고 찬바람이 우리의 생활을 엄습한다고 할지라도 봄은 오고 싹은 틀 것이다. 새마을운동의 '잘살아 보세'가 아니고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하여 우리의 주어진 현재의 삶에서 누리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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