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아내'

  • 입력 2010.08.16 11:05
  • 기자명 청강 장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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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결혼한 지 30년이 되었다.

1975년 12월 25일 지인의 소개로 광주역전의 한 다방에서 처음 만났다. 참하고 다소곳한 인상에 끌려 바로 '이 여인이다!'고 생각하였다. 딱 한 달 후인 1976년 1월 25일에 결혼하였다. 겨울이었지만 날씨가 봄날 같았고 태양이 중천에서 방글방글 웃었다. 식을 마치고 승용차로 광주 임동의 공용터미널로 가는데, 신통하게도 한 번도 빨간 신호등을 만나지 않았다. 버스로 여수까지 가서 일박하였다.

나는 아내를 한 번도 '여보'라고 불러보지 못했다. 지금까지도 쑥스럽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한 선배의 본을 받아서‘김여사’라고 불렀다. 아내는 나를‘선생님’이라고 불렀다.

1년 후에 큰 딸 소영이가 태어났다. 그때부터‘소영이 엄마’라고 불렀다. 아내는 나를‘소영이 아빠’라고 불렀다. 아기가 태어난 후로는 퇴근을 일찍 하였다. 딸아이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30대부터 40대까지 나는 술을 잘 마셨다. 처음에 아내는 술을 마시고 오는 나를 보고 좋아하였다. 술을 마시고 오면 말을 더 잘 하기 때문에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그 후 아들을 낳고 또 딸을 하나 더 낳았다.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일찍 귀가하였다. 하루는 만취하여 돌아와서 허리를 보듬고 뽀뽀를 하려고 하자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 때부터 화투에서 힌트를 얻어‘송학여사’라고 불렀다. 취하는 빈도가 많아지자 가시 달린 물고기처럼 톡 쏘았다.

그래서 '빠가사리 여사'라고 불렀다. 아이들과 지인들이 웃었다.

내가 영어 회화를 열심히 공부할 때는 하니(honey) 또는 다아링(daring)이라고 하였다. 둘째 딸이 중학교에 다닐 때 영어 선생님이 아버지가 어머니를 어떻게 부르는지 물어보았는데, 딸이 하니,라고 대답했더니 '멋진 아버지다.'고 하였단다.

한때 '애인 없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떠돈 적이 있었다. 나도 애인을 하나 두고 싶었다. 그래서 아내를 애인으로 하기로 하고 '미스 김'이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또 호칭을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가장 무난한 것이 세례명이라 '율리안나'라고 부르다가 또는 기분이 나면 '율리안나씨'라고 부른다. 아내는 나를 '율리오씨'라고 부른다.

50대 후반부터는 아내의 발언권이 더 강해졌다. 아내는 아이들과 소곤소곤 이야기를 잘 한다. 아이들 말에 의하면 엄마가 편하게 대해주니 좋다고 한다. 아이들을 왕자나 공주처럼 받든다. 나는 왕 대접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왕비 대접을 하기로 했다. 물론 호칭이 바뀌었다. '왕비 마마'라고 할 수 도 없어서‘마마님’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내가 두세 가지 방안을 가지고 선택해야 할 경우 자문할 때, 아내의 의견을 따르면 만족스러운 결과가 많이 나온다. 그래서 나의 스승 노릇을 한다. 그 때 부른 이름이 '스승님'이다.

아내는 아침이나 저녁이나 한 시간씩 기도를 한다. 봉사활동을 직업처럼 열심히 한다. 근심 걱정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긴다. 아이들이 남을 배려하며 착하고 건강하게 자라주었다. 우리가 맨손으로 집을 마련할 때나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복을 주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많이 들었다.

사위를 얻고 며느리도 얻었다. 딸, 아들, 며느리, 사위들이 아내와 통화를 할 때가 많다. 나는 주로 아내로부터 자녀 소식이나 생각들을 전해 듣는다. 그래도 나는 질투심이 생기지 않는다. 나도 싫지 않다. 이제 '대변인'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요사이 나는 '사랑하는 율리안나씨'라고 자주 부른다. 아내는 어쩌다 한 번씩 '사랑하는 율리오씨'라고 한다. 아내에 대한 호칭은 자주 바뀌었지만 아내와의 사이에 30년간 한 번도 권태기가 없었고, 평화로운 가정생활과 무난한 직장생활을 하고 영위하고 있다.

이제 아이들이 모두 집을 떠나고 우리 두 사람만 남았다. 지금도 별일이 없으면 바로 퇴근한다. 아내가 보고 싶기 때문이다. '어서 오세요.'하면서 환하게 웃는다. 아내는 나의 영원한 동반자요 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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