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근대를 걷다'

열 번째 골목_중정(仲町)거리 우편국

  • 입력 2010.09.06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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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째 골목을 걷는 발걸음이 무겁다.

내가 걸어 온 골목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던가를 살펴보려 뒤로 몸을 돌리는 순간, 지나온 길들이 아득히 멀어져가기 시작하더니 기억의 시계는 2007년의 가을로 나를 돌려놓는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가을의 문턱에서 나는 매주 나주의 곳곳을 돌며 문화유적들을 조사했었다. 내 고장에 꼭꼭 숨어 있는 문화자원을 조사하는 일은 그동안 귓가로 전해 듣기만 했던 거대한 시간들을 만나는 의미 있는 일이었다. 600년 된 은행나무가 있다는 금성산을 뒤져가며 동기들과 함께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걸었던 기억, 백발이 되신 동네 어르신들만 만나면 옛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곤 했던 기억들 속에는 항상 '누가, 언제, 무엇을'을 담아내는 삶이 자리하고 있었다. 경험하지 못한 시ㆍ공간들을 담아내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마치 오랜 시간 묻혀 있던 보물상자를 끌어안게 된 것 마냥 가슴 설레었다. 그것은 곧 우리가 찾아 헤매던 것들에 대한 반가운 '소식'이었고 소식은 곧 '만남'으로 이어졌다.

문화자원 조사과정은 지역민, 특히 오래도록 그 지역에서 삶을 영유해가는 '사람'들로부터 특별한 무엇인가를 전달받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기억 속에 가장 오래도록 남아 있는 선창거리 건축물 조사에서도 그랬다. 아무리 봐도 어느 곳이 식산은행 건물인지, 포목점이었는지 알 수 없는 막막함 속에서 그곳을 살아가는 이들의 기억을 통해 전달되는 숨겨진 문화자원들의 소식은 진정 손꼽아 기다리던 편지를 전해주러 오는 우체부 아저씨의 자전거 소리처럼 반가움과 설레임을 가득 담고 있었다. 그렇게 만나게 되었던 수 많은 건축물들 가운데서도 지역민들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자리하고 있는 중정거리의 '우편국' 건물은 일제강점기 하에 수탈을 위해 마련한 연락망의 구실을 하던 곳이었다. 현재는「삼락회관」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는 옛 우편국 건물은 반가운 '소식'보다는 우리네 삶의 풍요를 송두리째 거두어 가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옛 기억을 더듬는 이들의 삶에서는 향수어린 눈빛을 볼 수 있었던 곳이기도 하였다.

중정거리를 마무리하는 건물이자, 서정거리의 시작점인 우편국 건물은 본래 붉은 벽돌의 느낌을 살려 복원한다면 좋을 듯하다. 중정거리를 비롯한 서정거리는 특히 상업적인 성향을 지닌 거리였기에 상점의 발달과 기능이 현재에도 많이 남아 있다.

나는 아마도 이곳에 '유리공예'라는 예술 콘텐츠를 가미할 듯하다. 근대 건축물들을 재생ㆍ복원하고 비어 있는 건물들에 유리공예가들의 둥지를 틀 수 있도록 지원정책을 마련하는 일에서부터 거리에 '이야기성'을 부여하는 일까지, 그리고 영산강, 슬픈 근대를 거쳤던 선창거리의 역사, 지금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공간 곳곳에 오색 유리공예로 형상화하는 작업! 이야기를 담고 있는 화려한 색감의 유리조각품과 공예품들은 시각적 환기를 불러 올 것이며 홍어의 알싸한 냄새와 혀를 얼얼하게 하는 맛, 맨들맨들한 유리공예품의 보드라운 촉감들은 모두가 오감(五感)을 자극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옛것과 지금의 것들이 만나 이루어지는 창조적인 공간은 기억을 더듬는 '장소'가 되어 우리네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를 향유하는 현대인의 정서는 물론 경제적인 풍요도 함께 일 것이라는 생각은 지역민의 삶과 새로운 것들과의 조화에 대한 고민도 동반되어야 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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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선 학생독립운동기념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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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仲町)거리 구 영산포 우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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