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백산시 연수를 다녀와서

시민들의 삶이 너무나 자유롭고 행복하게 보여

  • 입력 2011.12.15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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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백산시에서 근무한다는 설렘을 안고 내가 가서 잘 할 수 있을까, 기대 반 걱정 반 새벽 4시 30분에 나주에서 출발하여 오전 9시 30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중국 현지시간 오후 6시에 장춘공항에 도착하여 백산시 직원과 만나 공항 밖으로 나오는 순간 눈에 보이는 것 모두가 하얀 눈뿐이었다. 차를 타고 밤 11시가 넘어서야 비로소 백산에 도착, 숙소(원룸 아파트)에 들어가 짐을 정리하고 추위에 떨면서 잠을 청하는데 밖에는 여전히 함박눈이 내리고 시간은 자정을 지나 새벽으로 향하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천정을 바라보면서 비로소 낮선 땅에 왔음을 실감했다.

백산에서의 생활 중 가장 어려운 부분이 식사 문제였다. 처음 며칠은 아침에 저녁밥까지 한꺼번에 하여 아침밥을 먹고 밥통을 보온으로 맞추어 놓은 후 시청에 출근하여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먹고 퇴근하여 저녁밥을 먹는데 밥 아랫부분이 타져 있는 것을 보았다. 이상히 여겨 어느 날 물어보니 보온으로 해 놓아도 밥이 타니 밥통 코드를 빼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그 후로 탄 밥을 먹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혼자서 밥해먹는 것도 어려운데 식은 밥을 먹을 때도 많았다. 반찬은 한국에서 가져온 김치, 깻잎, 멸치 등 냉장고에 보관하기 쉬운 간단한 것들로 해결하였다.

구내식당은 시청 맞은편에 있는데 공무원 이외에는 들어올 수 없으며 원래 가격은 8원(우리 돈 1,600원)이나 정부에서 7원을 보조해 주고 본인은 1원(우리 돈 200원)을 부담하는데 각자 소지한 전자 식권카드를 계산대에 대면 자동으로 1원이 차감된다. 나는 전자 식권카드가 없으므로 시청에서 준 식권을 가지고 다니면서 점심을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백산시 청년회 회원이 점심을 먹기 위해 줄을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나중에 알아보니 청년회도 정부에서 주관하며 그들도 공무원이라고 하였다.

백산시는 훈강을 중심으로 강남과 강북으로 도시가 형성되었으며 도시 외곽에는 사방으로 산이 병풍처럼 에워 쌓여 있다. 산 안에 도시가 있어 다른 지역엔 태풍이 와도 이곳에는 태풍이 거의 오지 않는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맞벌이를 한다. 먼저 들어온 사람이 밥을 하여(대부분 남자들이 반찬까지 만듦) 저녁밥을 먹고 강변에 나가 가족과 함께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비교적 좁은 시내에 인구가 33만명이니 일부만 강변으로 나와도 강둑 산책로에는 사람들로 가득하게 된다. 강폭은 200m 정도인데 양쪽으로 강둑을 높게 쌓아 인도를 만들고 나무를 심어 사람들이 이용하기에 편리하게 되어 있다. 강남과 강북을 연결하는 다리가 4개 있는데 모양과 위치에 따라 향양교, 통강교, 무지개교, 흥태교로 불리며 그 거리는 약 1㎞ 정도 간격으로 놓여 있다.

양쪽에 부모가 가운데 아이 1명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며 강변을 거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까지 행복하게 느껴졌으며 한편으로는 집 생각이 날 때도 많았다. 조선족을 비롯한 소수민족은 자녀를 2명까지 낳을 수 있는데도 교육비가 많이 들고 아들인 경우 아파트가 없으면 결혼을 못한다고 하니 자녀에 대한 부담이 많아 40대 이하는 민족과 남녀에 관계없이 1명만 낳아 기른다고 하였다.

또한, 강변 여기저기에 광장이 있는데 밤6시부터 8시까지 음악에 맞추어 에어로빅 비슷한 거리춤을 추는 사람들로 떠들썩하다.

행정은 공산주의 방식인 것 같은데 시민들의 삶은 너무나 자유롭고 행복하게 보였다. 그리고 시내 곳곳에는 하수도 공사, 도로포장, 대형 건물들이 들어서는 등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곳 백산에는 조선족은 많지만 한국 사람은 나 혼자라고 들었다. 공무원이자 한국인을 대표해서 살아간다는 것이 조금은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누구를 만나든지 한국 나주시청에서 왔음을 말하고 언제나 긍지를 가지고 당당하게 생활했다. 특히 조선족이 많고 중국과 북한의 국경도시에서 살다보니 한반도 통일, 북한을 보는 관점과 천안함 사건에 대한 나의 생각을 묻는 질문이 많았다. 북한사람들을 자주 만나는 이곳 사람들에게 함부로 말할 수가 없었다.

내가 근무하는 외사판공실은 총 12명인데 주임실(1명), 부주임실(1명), 외사과(3명), 종합과(4명), 화교과(3명)로 구분되어 작은 방처럼 생긴 5개의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업무는 시청 공무원의 공무국외여행허가, 화교 등록 관리, 국제 자매결연 등 외교에 관한 일과 중앙정부의 지시가 있을 때에는 국경의 영토를 조사하는 일도 하고 있다.

백산시는 454㎞의 국경선이 있는데 중앙정부의 지시에 따라 금년 6월부터 10월까지 중국과 조선의 국경을 조사한 후 귀속국을 재조정하는 일을 하고 있다. 조사방식은 북한과 중국이 합동으로 진행하는데 관할 현(현급시인 임강시, 장백조선족자치현) 직원 등 관계자가 함께 진행하고 있다.

당초 국경을 나눌 때 압록강을 경계로 하되 보이는 섬들은 모두 북한이 소유하도록 하였으나 물이 현저하게 줄어 새로운 섬들이 많이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북한에서 살다온 화교 가이드가 새로 나타난 섬은 중국의 영토로 귀속된다고 귀뜸했다.

공무원으로 임용되어 한번 외사과에 발령을 받으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곳에서 정년을 한다. 업무는 그때그때 주임의 지시가 있으면 하고 과장 이하 일반 직원은 시장, 부시장(6명)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 심지어 나주시에서 파견 온 나도 1명의 부시장을 1차례 만났을 뿐, 시장은 한 번도 본적이 없다.

특히, 백산시청에 근무하면서 외사판공실 외의 다른 부서를 가본 곳은 체육국과 민족위원회 두 곳 뿐이며 외사판공실 직원을 제외하고 소개 받은 공무원은 백산시청 7명(지진국, 체육국, 민족위원회), 임강시청 1명, 장백현 3명이 전부다.

뿐만 아니라 자기 부서의 업무가 아니면 정보가 차단되어 알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으며 다른 사람의 일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백산시 공무원과 학교 선생님들을 만날 때마다 나주시를 소개하고 나주시 일반 공무원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3년마다 새로운 부서로 자리를 옮겨 근무한다고 말하자 그들은 역시 나주시가 민주적이고 선진 행정을 하고 있다며 몹시 부러워했으며 한곳에서 평생을 근무하기는 좀 어려운 일이지만 중국은 사람이 많아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동안 만났던 많은 중국 친구들, 한국어로 말할 줄 알고 김치와 밥을 먹는 많은 조선족, 한국어능력시험에 합격하여 기뻐하는 사람, 조선족 교회에서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가 평화통일을 이루어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아름다운 삼천리 금수강산이 되기를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뇌리를 스쳐간다.

끝으로, 연수가 끝나는 날까지 나를 도와준 왕굉위 주임, 업무능력이 뛰어났으며 자기 집에 초대하여 손수 음식을 만들어 준 장희룡 통역담당, 신유재, 왕광여, 이군 과장을 비롯한 외사판공실 직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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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시청 강용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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