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논어공부(論語工夫)

  • 입력 2011.12.15 19:41
  • 기자명 김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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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정신문화사에는 민족고유의 풍류도와 함께 유교문화, 노장사상, 불교문화가 줄곧 영향력을 발휘했다. 한반도에 들어온 외래문화와 종교는 그 본토에서보다 심오한 변형을 이루어 독특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약 200여년 전 기독교 복음이 들어왔을 때 문화적 진공상태에 있지 않았다. 유교와 불교가 가꾸어 놓은 토양 위에 기독교 복음이 들어와 한 민족의 새로운 종교문화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기독교 복음이 동양문화와 만나므로 복음의 본래성과 민족고유의 역사, 문화와 대화하므로 진리의 공감대를 확산해 나가자는 뜻에서 동양의 고전을 공부하게 되었다.

논어는 공자(孔子)의 어록이다. 유학에서 공자의 위상은 기독교에서 예수에 해당한다. 예수의 생애와 교훈,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에 기록되어 있다.

논어와 세가(世家)는 공자의 복음서에 비견된다. 맹자(孟子)는 성경의 바울서신으로 볼 수 있다. 논어 공부에 앞서 공자라는 인물에 대해 역사적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사기(史記)의 공자세가(孔子世家)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공자는 이름이 구(丘)요, 자가 중니(仲尼)니 그 선대는 송(宋)나라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숙량흘'(淑梁紇)이요 어머니는 顔氏이니 노(魯)나라 양공(襄公) 22년(기원전 551년) 경술년(庚戌年) 11월 경자일(21일)에 공자를 노(魯)나라 창평향 추읍에서 출생하였다. 공자는 아이가 되어 장난할 때에 항상 조두(俎豆)를 진설하여 예를 행하는 용모를 베풀었다. 조두는 '제기조' '제기두'니 제사기구를 가리킨다.

'세가'에 의하면 공자는 숙량흘(淑梁紇)을 아버지로 안씨녀(顔氏女)를 어머니로 하여 출생했다. 아버지의 이름이 성이 안 붙은 淑梁紇이 된 것으로 보아 그 아버지의 대까지도 성(姓)이 없었던 어떤 평민족속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도울논어) 70세에 가까운 숙량흘은 곡부의 안양(顔襄)노인의 셋째 딸 안징재를 취하여 공자를 낳은 것이다. 공자는 체구가 컸다. 지금도 산동사람은 몸집이 크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산똥따한'(山東大漢)이라는 말이 있다. 공자의 체격은 공자의 모든 사실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공자의 엄청난 정렬과 기나긴 방황, 세간적 결단과 초세간적 승화의 모든 사실이 바로 이 체구와 체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공자의 체격에 관련하여 사기(史記)는 이렇게 기록한다.

'孔子長九尺有六寸, 人皆謂之長人而異之'(공자는 키가 아홉척하고도 여섯촌이나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항상 그를 '키다리'라고 불렀다. 그를 볼 때 기이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논어의 첫머리는 학이편(學而篇)으로 시작한다. '학이'라는 편명은 첫 문장에 나오는 단어를 따서 제목으로 삼은 것이다. 성경에서 '창세기'란 책의 제목도 첫 문장에 나오는 태초(太初)를 의미하는 '브레쉬트'로 되어 있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에 맞추어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배우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새 새끼가 자주 나는 연습을 하는 것같이 배운 다음에는 그 시대에 부응하는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지행합일(知行合一)되는 학문을 하므로 중심에 기쁨이 느껴지는 것이다.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뜻을 같이 하는 자,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선(善)이 마음에 있으면 가까운 곳,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人夫知而不溫, 不亦君子乎(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서운해 하지 않는다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溫(성낼온)은 노여움을 품는다는 뜻이다. 군자는 덕(德)을 완성한 이의 명칭이다.

낭중지추(囊中之錐)란 말이 있다. 주머니에 들어있는 송곳이 어찌 잊혀진 바 되겠는가? 그 시대가 요구하는 '행동하는 양심'이 된다면 반드시 역사가 기억해 줄 것이다. 인위적인 치적을 쌓으려고 무리한 짓을 해도 선하지 않은 일은 낭패를 보게 될 것이다.

논어의 관(冠)을 차지하는 '學'이란 화두로 시작하는 이 세 마디는 공자의 전생애를 압축시킨 공자말년의 달인적(達人的) 회상으로 풀이한다. '學'이 미지의 세계로 던짐이라면 '習'은 실천의 세계를 의미한다. 이 실천은 반드시 때를 갖는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공생에 나올 때에 그 시기는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힌 후였다.(마가1:14) 당대의 의인이요, 예언자인 세례요한이 왕의 부도덕성에 대해 비판하다가 친 로마세력인 분봉왕 헤롯 안티바스에 의해 감옥에 갇힌 때였다.

메시야를 대망하던 온 민중들이 의인의 고난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새 세상을 바라는 욕구가 분출되어 올라온 때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따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마가1:15)고 선언했던 것이다. 성경에서는 이때를 '카이로스'라고 말한다. 일상의 때가 아닌 '결정적 시기'를 말하는 것이다.

춘추전국시대라는 난세에 태어나 윤리와 사상을 전파하였던 공자도 분명히 시중인(時仲人), 시대의 요구에 부응했던 인물이었다.





김병균

(고막원교회 목사,

나주시민단체협의회 상임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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