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과 언론보도

  • 입력 2011.12.16 17:55
  • 기자명 김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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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여성 아나운서의 자살보도가 연일 인터넷 포털뉴스의 주요뉴스로 올라와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전직 대통령에서부터 유명 연예인까지 대중들에게 친숙한 사람들의 자살보도가 잊을만하면 발생하곤 한다. 대한민국의 자살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09년도 OECD의 통계연보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률은 10만명당 18.7명으로 OECD 회원국 평균치인 11.9명보다 훨씬 높다. 한때 자살국가로 알려진 일본을 능가하는 수치이다.

언론의 자살보도와 자살자 증가가 통계학적으로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사실은 전세계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미국 사회학자 필립스는 1974년 뉴욕타임스 자살보도 기사와 자살통계를 비교해본 결과, 자살보도 건수가 늘어날수록 실제 자살건수도 늘어난다는 사실을 최초로 입증했다. 소위 '베르테르 효과'가 입증된 것이다.

필립스의 연구이후 세계 여러나라에 비슷한 방법으로 자살과 언론보도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는데, 거의 모든 나라에서 자살보도가 늘어나면 실제 자살건수가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언론의 보도가 집중되는 유명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의 자살은 모방자살을 부추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경우도 베르테르 효과가 학술적으로 입증되었다.

자살의 원인은 매우 복합적이기 때문에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 2008년 7월 이후 1년간 언론의 자살보도를 집계분석한 결과, 자살의 원인에 대한 성급한 추측이나 단정이 포함된 기사가 약 61%에 달했다. 그 주된 원인으로 언론이 제시한 것은 우울증과 인터넷 악성댓글이었다. 그러나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로 인해 또다른 모방자살이 발생한다는 점은 간과되고 있다.

언론보도가 자살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다양하게 설명된다. 일단 자살을 생각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언론보도는 모방자살을 부추키는 방아쇠와 같은 역할, 마른 풀숲에 성냥불을 던지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단국대 김연종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자살관련 신문기사 중 20.7%가 은연중 자살자를 미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이 자살율 최고국가가 되자 지난 2004년 보건복지부, 한국기자협회, 한국자살예방협회가 공동으로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만들었다. 유가족의 사생활 보호, 자세한 자살방법 묘사 자제, 자살동기에 대한 섣부른 단정 자제 등을 언론사에게 당부했다. 그러나 그런 권고기준이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유명 연예인의 자살방법을 단독으로 입수해 상세히 보도한 것을 특종이라고 추켜세우는 것이 한국 언론계의 풍토이다.

언론에게 자살사건은 외면할 수 없는 뉴스의 소재이다. 그러나 독자의 눈길을 끌고 흥미를 자극하기 위해 만든 기사로 인해 또 다른 생명이 희생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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