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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실마을과 김종직● 집성촌의 장점을 살린 지도자
● 새마을운동으로부터
토담을 지켰던 주민들
김준 기자  |  najuk2010@naju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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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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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 개실마을. 선산김씨 문충공파의 종가가 자리한 이 마을은 예로부터 마을에 꽃이 많이 피고 골이 아름다워 가곡 또는 개화실이라 했는데 음이 변해 개애실로 불리다가 개실로 불리게 되었다.

개실마을은 60가구 150여 명이 모여 사는 전형적인 민속마을이다. 조선 중엽 영남사림학파의 종조인 점필재 김종직(1431∼1492) 선생의 후손 선산김씨 집성촌으로 350여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다.

김종직은 고려말 정몽주ㆍ길재의 학통을 이어받은 아버지로부터 수학하였고 훗날 사림의 종조가 됐다. 성종 때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면서 성리학적 개혁정치를 추진한 사림파의 중심인물이었다.

김종직의 5대손 김수휘가 1651년에 이곳으로 이주ㆍ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던 무렵부터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약 350년 된 대나무 숲이 있으며 마을의 80%가 한옥을 유지하고 있다.

마을에는 민속자료 제62호인 점필재 종택을 비롯하여 문화재 자료 11호인 도연재, 유형문화재 209호인 점필재 문적유품 등의 문화재가 있다. 이밖에도 김종직의 유품이 세대별로 분산되어 보관 되고 있는데 수필, 당후일기, 교지, 첩지, 서찰, 호구단자 등 세대별 고문서 114점과 김종직의 수택유품 등이 남아 있다.

개실마을이 전국에서 손꼽히는 체험마을로 자리를 잡기까지는 전통 한옥마을이라는 유형자산과 함께 헌신적이고 탁월한 지도력을 가진 선각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종직의 17대 종손인 고 김병식 씨는 16세 때부터 줄곧 고향에서 종택을 지켰다. 초대와 2기 경상북도 교육위원을 역임하였고 쌍림농협조합장과 개실마을발전추진위원장을 맡아 전통문화를 현대인들에게 체험하고 알리는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개실마을은 선산김씨 집성촌으로 종손인 김씨의 영향력은 결코 적지 않았다. 주민들의 단합과 단결 그리고 사업을 추진하는데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김씨의 솔선수범과 애족ㆍ애향심이었다고 한다.

쌍림딸기영농조합장을 역임하고 현재 개실마을영농조합법인 대표를 맡고 있는 김병만 씨는 개실마을 녹색농촌체험마을을 이끌고 있는 지도자다.

이 마을은 농토가 많지 않아 예로부터 대농이 없었고 수년 전까지는 주요 소득 작물로 딸기농사가 주업이었다. 쌍림딸기는 당도가 높고 향기가 좋아 소비자들이 매우 선호했지만 대부분의 농민들이 노령화되면서 지금은 딸기농사를 짓는 농가가 많이 줄었다.

딸기재배농가가 많을 때 딸기영농조합을 만들어 쌍림 딸기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포장과 유통을 책임졌던 사람이 바로 김병만 개실마을영농조합법인 대표다.

1970대 초반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흙담을 허물고 시멘트 블록으로 교체하면서 한옥을 양옥으로 바꾸는 일들이 반강제적으로 이루어졌다.

새마을운동에 동참하는 마을은 정부가 마을길을 넓혀주는 등 여러 가지 지원과 혜택을 주었지만 그렇지 않은 마을은 개발에서 소외시키는 정책을 폈다.

지붕개량사업이 전개되면서 정부보조금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마을회의를 통해 전통한옥을 보존하기로 의결하였고 80% 이상이 한옥을 지켜 온 결과, 지금의 개실마을의 가장 큰 자산이 되었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은 상대적으로 다른 마을에 비해 개발이 더딘 데 따른 불만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불만을 잠재우고 주민들을 설득했던 사람들이 바로 종택을 지키며 살았던 고 김병식씨와 김병만 개실마을영농조합 대표였다.

이러한 자산으로 2001년 행자부가 정책 사업으로 추진한 아름마을 가꾸기에 선정되어 한옥 민박지원 사업으로 1가구당 8천만 원의 보조금과 5천만 원의 자부담으로 14동의 한옥을 짓게 되었다.



친환경 농업은 농촌의 희망



7년 전 이 마을의 논에서는 긴꼬리투구새우가 발견되었다. 2005년 2월부터 발효된 야생동식물보호법에 따라 환경부에서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으로 지정된 이 동물은 잡초의 서식을 방해하고 논의 해충발생을 억제하여 친환경농법에 이용된다.

이는 마을에서 오래 전부터 친환경 농업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전통적인 한옥에서 즐기는 전통문화 그리고 자연과 함께 순환하는 농업이 이 마을을 찾는 내방객들을 다시 찾게 만드는 기반이 되고 있다.

다양한 체험이 가능한 프로그램은 청소년과 어른 모두를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요소다. 대나무 물총, 소리통, 연 만들기에서 짚공예와 비누, 압화를 만들 수 있어 어린이들의 흥미를 이끌어낸다. 두부, 엿 만들기와 떡 만들기는 물론 예절교육과 다도체험도 가능하다.

민박집의 이름도 덕동댁ㆍ하동댁ㆍ석정댁 등 요즘엔 흔하게 쓰지만 옛날에 댁호를 부르던 방식으로 정감이 간다.

단체 체험객을 위한 마을공동식당이 있어서 부녀회원들이 음식을 장만하여 내방객들이 이용할 수 있지만 민박을 하는 가정에서 시골 밥상을 받아볼 수 있는 맛도 일품이다.



고르게 나누어야 참여한다

개실마을은 14동의 한옥민박과 3동의 일반민박이 가능하다. 하지만 민박 이외에 체험회원들을 참여시켜 공동식당 등 각 체험 프로그램에 조별로 참여하여 수익을 내고 있다.

민박 이외에 체험회원들이 얻는 수익은 대략 1백만 원 가량이라고 한다. 평균 나이가 70세에 가까운 마을에서 한 달에 1백만 원의 수익을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체험마을을 통해 개실마을에 들어오는 연간 수익은 대략 15억 원 정도로 예상한다.

이렇게 되기까지 주민들을 대상으로 친절교육과 전문학습, 현장체험 등이 꾸준히 이루어졌다.

마을발전위원회 주관으로 지난 2006년 4월 20일 제1회 개실마을농촌관광 강좌를 개설해 마을주민과 주변 4개 체험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농촌관광 전문가를 초빙해 연 2~3회 이상 교육을 받았다.

강신겸(전남대 교수), 김동신(솔로몬기업전략연구소장), 임용택(순천시농업기술센터), 조명상( 농촌체험프로그램 전문가) 등 전문가를 초청해 교육을 받았다. 또 한마음공동체를 방문해 현장학습 및 남상도 목사의 강의를 듣고 안국동 아름지기재단을 방문해 정민자 서울특별시 한옥자문위원의 강의를 듣는 등 교육을 통한 변화를 가져왔다.



[인터뷰] 도시생활보다 훨씬 좋아요

김병만 개실마을영농조합법인 대표



▲다른 체험마을과 달리 영농조합법인을 운영하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김병만 : 우리 마을은 민박은 물론 모든 체험 행사 등이 법인을 통해서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습니다. 민박도 법인에서 정해줍니다. 고른 분배를 하기 위해서지요.



▲마을주민의 평균 연령이 70세라면 앞으로 10년 이내에 체험마을을 운영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게 되지 않을까요?

김병만 :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 추석에 고향을 찾은 사람들에게 도시에서 고생하지 말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살라고 했습니다. 일찍 퇴직한 사람 등 마을로 귀향할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젊은이들의 유입이 많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귀향이나 귀촌은 결국 경제적인 수익이나 자녀교육, 문회생활 등과 무관하지 않는데 도시민들의 욕구를 만족시켜 줄 수 있을까요?

김병만 : 4년 전에 직장을 그만두고 귀향해서 체험지도사와 한우사육 그리고 농사를 지으면서 월 5백만 원 이상의 순소득을 올리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도시생활보다 훨씬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어요. 지금은 교통이 편리해서 자녀교육이나 문화생활도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개실마을의 전통 체험만으로 도시민들을 불러들이는데 한계가 있지 않습니까?

김병만 : 주변에 대가야 답사의 1번지인 지산동고분군이 있고, 대가야시대 궁성을 방어하기 위한 주산성과 산림욕장까지 걷기 코스도 잘 꾸며 있고 대가야박물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특히 대가야왕릉전시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순장무덤을 실물크기로 재현해 놓아서 청소년들의 역사 공부에도 많은 도움이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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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마을공동체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실천한 사람들이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역사회에 대한 꿈의 실천으로 삶의 근본을 이루고 있는 마을에서 공동체성과 공공성을 잘 구현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았다. 모두가 농촌은 힘들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 가운데 척박한 곳에서 희망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작은 원동력이 되었으면 한다. 함께 농사짓고 서로 돕는 우리의 전통양식을 새롭게 접목하면서 시작한 공동체의 삶에서 주민들이 스스로 조직하여 참여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전파해나가는 과정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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