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편견

정신 건강의 걸림돌

한영훈의

정신건강

이야기

  • 입력 2012.03.12 10:30
  • 기자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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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정신과'라는 명칭이 부정적인 뉘앙스를 띄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정신건강의학과'로 완전 개칭 되었다. 또한 기존에 '정신분열병'으로 불리던 질환이 '조현병'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조현병은 '현악기의 줄을 조율한다'는 사전적 의미에서 따온 것으로서 정상적으로 현악기가 조율되지 못했을 때의 모습이 마치 정신분열로 혼란을 겪는 환자의 상태를 보는 것과 같다는 데서 비롯됐다. 기존의 '정신분열병'이라는 병명이 가지는 편견과 선입관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다.

그 밖에도 일부 가수들을 주축으로 정신 건강의 날 기념 콘서트를 열기도 하고 최근에는 방송 쇼 프로그램에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이 자주 등장하여 그 문턱을 낮추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과거에 비해 정신과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주변 사람들을 보면 꼭 그렇지 만은 않은 듯하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 같아서...'라는 말로 정신과 방문을 꺼려하거나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처음 사람들을 만나 필자를 소개하면 '제가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요. 정신상태가 좀 이상한 거 같아요. 제 정신 상태 좀 봐 주세요' 등의 말들을 많이 한다. 물론 농담으로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속사정을 들어보면 의외로 불면, 불안, 우울 등의 증상을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래서 진지하게 정신과 진료를 권하면 난색을 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정신 질환은 특별한 누군가에게 생기는 병이 아니다. 2011년 보건복지부 정신건강 실태 조사에 따르면, 577만 명이 최근 1년 사이에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을 경험하였다고 한다. 이는 전체 인구의 16%, 6명 중에 1명에 해당하는 엄청난 숫자이다. 더 이상 정신 질환은 특별한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가족, 친구, 이웃의 이야기인 것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이들 중 단 15.3%만 치료를 경험하였다고 한다. 정신 질환도 다른 신체적인 질환과 마찬가지로 치료를 받지 않거나 치료 시기가 늦어지면 예후가 좋지 않은 것은 당연한 얘기다. 치료를 받지 않은 85%의 환자들은 아직도 고통 받고 있을 것이며, 심한 경우 자살 등의 극단적인 결과를 맞았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정신과 치료 받기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편견 때문일 것이다.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이상한 사람, 위험한 사람으로 취급해버리는 사회적 낙인이 가장 큰 문제이다. 정신질환이 있으면 이상한 사람인가? 그렇다면 우리 주변의 6명 중 1명은 다 이상한 사람이란 것인가? 정신 건강 역시 우리 건강의 일부분이다. 그리고 행복한 삶에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편견 때문에, 선입관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하고 건강관리를 하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불행인 것이다.

최근 나주시에 소재한 정신질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사회 복지 시설의 이웃들이 강력히 항의를 한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같은 아파트 내에 정신질환자들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불안해서 같이 살 수 없으니 이주하라는 것이다. 아파트 값도 떨어지니까 이주하라는 이웃들을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마냥 비난할 수도 없는 일이다.

빠르면 내년부터 우울증도 정기 검진에 포함된다고 한다. 정신 질환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행정적으로는 많은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인식의 변화가 없다면, 결국 제자리걸음이 될 것이다.

TV 홈쇼핑에 하루가 멀다 하고 암보험, 치매 보험 등이 소개된다. 언젠가 TV 홈쇼핑에서 우울증 보험, 조현병 보험도 광고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 한영훈 전문의

국립 나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나주시정신건강센터 자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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