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고향 사랑' 마을은 잊지 않는다

화당 김창수 선생 기린 산포 '등수리민의 날'
김 선생 "내 제삿날은 마을잔치 열라" 유지

  • 입력 2012.04.09 10:17
  • 기자명 나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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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날이면 "내 제삿날은 마을잔치 열라"는 항해를 끝마친 선장을 연상케 하는 말을 남겼다는 그.

나주 산포 등수리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건너가 성공하여 고향 마을을 위해 많은 일을 한 '김창수 선생을 추모'하고 주민들의 화합을 다지는 '제25주년 등수리민의 날'이 지난 4월 1일 등수리 경로당에서 열렸다.

등수리민, 외부 손님 등 3백여 명이 참석하여 맛깔나게 차려진 상을 받았으며 북공연 등이 흥을 돋우었다.

이기열(나주농민회 감사)씨는 "사촌인 이기영 이장이 젊은 시절 새마을지도자로써 열성적으로 마을 일을 해오는 모습을 본 김 선생이 감동을 받아 마을에 많은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또 선생은 경로당을 짓고 그 앞으로 논 908평을 희사해 경로당 관리와 노인들의 일에 경비를 댈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등수리에서는 10여년 전에 김 선생이 돌아가셨지만 해마다 4월 1일이면 경로당 내외부에서 김 선생을 추모하는 행사를 해오고 있는데 올해는 외부에서 큰 잔치를 벌였다. 마을부녀회, 작목반 등이 총 동원돼 자금을 서로 부담해 선생을 추모하고 인심좋고 살기좋은 마을 만드는 날로 그 어느 축제보다 뜻깊은 하루를 만들었다.

남명자씨는 "선생의 자손들이 마을에 살고 있으며 선생처럼 인품이 좋다. 워낙 좋은 일 한 것을 내보이기 싫어해 인터뷰를 거절했다"고 전했다.

한편 김창수 선생은 일제시대 18살이 되던 해에 도일하여 갖은 고생끝에 성공한 재일사업가이다. 그는 태어난 고향 등수리를 잊지 않고 찾아와 마을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 현재 그의 자손들은 등수리에 정착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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