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동학농민학살 대규모 격전지였다

당시 참전한 일본군 병사일지 최초 공개

  • 입력 2013.09.02 13:26
  • 기자명 박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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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한 4박5일간의 나주일정 꼼꼼히 기록

1895년 동학농민혁명이 치열하게 전개됐던 시절, 당시에 일본군으로 참전한 한 상등병의 종군일지가 공개돼 화제가 되고 있다. 당시 동학농민군 학살의 전담부대의 하나였던 일본군 후비보병 제19대대 제1중대(東路 분진대) 제2소대 제2분대 쿠스노키 마사하루(楠正治) 상등병의 ‘종군일지’가 바로 그것이다.

앞서 본지 957호에서 예고한대로 원광대학교 박맹수 교수의 동학과 나주라는 주제의 기자회견이 지난 28일 금성관에서 열렸다.

박 교수는 이날 쿠스노키 마사하루 상등병의 종군일지 필름본과 번역본을 공개하며, 800여명의 일본군이 금성관에 진지를 세우고, 680여명의 동학농민군을 처형했던 생생한 기록이 한 병사의 종군일지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며, 특히 기록 자체가 참혹하리만치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어 사료적 가치도 뛰어나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그 동안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15년간의 추적 끝에 발굴한 사연 등도 공개했다.

120년간 은폐된 역사가 햇빛을 봤다

박 교수는 1995년 훗가이도에서 동학군지도자로 추정되는 해골이 발견된 것이 시발점이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이번에 공개된 종군일지와 그 이전에 공개된 적이 있는 진중일지 등을 통해 일본근대사가 얼마나 역사를 은폐해왔는지 알게 됐다는 점도 공개했다.

그 동안 일본근대사에서는 동학농민전쟁과 관련해 조선군의 청으로 참전했다는 식으로 알려졌으나 이번 문헌을 통해 당시의 일본 정부가 자의적 판단에 따라 일본군을 참전시켰다는 것이다.
진중일지는 당시 참전한 일본군이 변방부대가 아니라 주력부대였다는 점과, 참전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직시한 명령서가 발견된 점 등을 예로 들었다.

사료에는 군 상층부에서 동학당에 대한 처치는 엄멸(모조리 살육)하라는 교지내용에 담겨있다.
이에 따라 병사가 쓴 종군일지에도, 동학농민군에 대해 총살, 돌살(돌격하여 살해), 타살(몽둥이 등으로 살해), 소살(볏짚으로 쒸여서 불에 태워 살해) 등이 구체적으로 적혀있다.

종군일지가 아주 구체적이고, 생생하고 극사실적으로 기록된 것에 대해 박 교수는 “아마 이를 기록한 병사의 가슴 한 켠에는 역사적 고발 정신같은 것이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치열하게 기록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박 교수는 이번에 발견된 종군일지를 통해 동학농민군에 대한 일본군의 참혹한 학살이 사실로 드러났다며, 역사를 바로세우는 일을 이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이곳 나주가 동학농민군 학살이 가장 잔인하고 대규모로 진행된 점이 밝혀진 이상, 동학농민군에 대한 역사바로세우기 시작점은 나주가 되어야 한다는 점도 거듭 강조했다.

한편, 이번에 공개된 병사의 종군일지는 길이 9m가량의 두루마리형으로 오는 12월께 번역본이 책으로 나올 예정이다. 박 교수는 쿠스노키 마사하루(楠正治) 상등병의 ‘종군일지’가 책으로 나오게 되면 이곳 나주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수도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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