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샘솟는 우물 ‘완사천(浣紗泉)’

태조 왕건과 장화왕후 오씨부인 사랑이야기

  • 입력 2013.09.09 14:14
  • 기자명 김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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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시청 앞 국도변에 장화왕후오씨유적비라는 비석과 함께 두 사람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한 여인이 바가지에 물을 떠서 왕건에게 내미는 모습의 조형물이다.

완사천(浣紗泉, 나주시 송일동 1096-5) 옆엔 버드나무가 있으며, 작은 공원으로 만들어진 공간은 오래된 역사 속의 사랑의 장소라 남달라 보인다.

완사천은 1986년 2월 17일 전라남도기념물 제93호로 지정되었다. 나주시청 앞 300m 지점 국도 13호선 주변에 있는 완사천은 원래 작고 평범한 옹달샘에 지나지 않는 규모였다고 한다.
나주시청을 지금의 자리로 옮길 때 샘 주위를 화강암석재로 다듬어 지금의 모습으로 고쳤다고 한다.


완사천은 샘과 버들잎, 물긷는 처녀와 나그네가 주제가 되는 전설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곳으로 고려 태조 왕건과 관계된 전설로 유명하다.

완사천은 고려 태조 왕건과 관련된 유적이다. 태조 왕건은 고려를 건국하기 전인 903-914년 사이 10여 년 동안, 나주는 태봉국 궁예의 장군이었던 왕건과 견훤이 후삼국의 패권을 잡고자 공방전을 벌인 곳이다.

이후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개국했다. 이 과정에서 왕건이 나주 오씨(훗날 장화왕후)와 인연을 맺고 고려 제2대왕 혜종을 낳았다.


왕건이 수군장군(水軍將軍)으로 나주에 와서 목포(지금의 나주역 일원)에 배를 정박시키고 물가 위를 바라보니 오색구름이 서려 있으므로 신기하게 여겨 가보니 샘가에서 아름다운 처녀가 빨래를 하고 있었다.

왕건이 물 한 그릇을 청하자 처녀는 바가지에 물을 떠 버들잎을 띄워서 건넸다. 급히 물을 마시면 체할까 하여 천천히 드시도록 한 것이다. 왕건은 처녀의 총명함에 끌려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였으니, 이 분이 곧 장화왕후 오씨부인이다.

왕건과 장화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무(武)가 후에 고려 제2대 왕에 오른 혜종이다. 후에 예종이 태어난 이 일대를 흥룡동이라 했고, 전설 속의 샘을 완사천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샘은 천년 이상 끊임없이 넘쳐 흐르고 있는데 1986년에 새로 정화했다.

완사천 샘가에는 나주오씨 문중에서 세운 장화왕후 기념비가 서 있다. 완사천 위에는 혜종과 장화왕후 오씨를 기리는 흥룡사라는 절이 있었고 절 안에 혜종의 소상을 모신 혜종사가 있었으나 1429년(세종 11) 폐찰됐다

완사천은 한국 역사에서 고대사회에서 중세사회로의 전환시기인 신라말 고려초에 나주 호족세력과 왕건이 고려를 개국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유적이다.


완사천 부근에 흥룡사라는 사찰이 있었고 흥룡사에는 혜종 임금의 소상을 모신 혜종사가 있었으나, 1429년(조선 세종 11) 이안관 장득수가 혜종의 소상과 진영을 옥교자에 모시고 2월 6일 서울로 떠났다는 <금성일기> 기록으로 보아 이때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성종 2년(983)에는 전국 12목의 하나로서 나주목이 되어 5개 군과 11개 현을 다스렸다. 현종 9년(1018)에 8목으로 개편되면서 오늘날의 전남 지방에서는 유일하게 나주만 목으로 남아 이 지방의 중심지가 되었다. 특히 거란의 침입을 피해 현종이 나주로 오게 되었는데, 이는 나주가 전라도 지역에서 고려를 상징하는 거점이었음을 의미한다.

한편 완사천 공원 정자 옆에는 나주 장산리 도로 유구가 복원되어 있다. 도로유구는 도로에 남겨진 수레바퀴 자국 등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함께 출토된 유물을 근거로 고려시대의 유적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것은 예로부터 전라도의 역사를 간직한 나주목의 유구한 역사를 상징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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