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놓고 농사짓는 체계적인 환경 만들고 싶어

30년간, 배와 함께해온 선호농장 김용안 농부

  • 입력 2014.09.22 09:29
  • 수정 2014.09.22 09:35
  • 기자명 이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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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면 옥산리에서 선호농장을 경영하며 30년째 배 농사를 짓는 김용안(59) 씨는 요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추석이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탓에 과수농가들은 너나할 것 없이 성장촉진제(지배린)를 사용해 상품을 내놓았다.

각종 언론에서는 미숙과 출하의 염려와 더불어 배 값이 대폭 상승할 것이라고 앞 다투어 전망했다. 때문에 엄청난 양의 배가 쏟아졌고, 가격은 하락했다.
그러나 명절이 지난 지금, 선호농장을 비롯한 배 과수농가들은 울상이다. 배 값이 한없이 폭락했다. 공판장에서 책정한 배 한 상자(15kg, 20개)의 가격은 현재 15,000원이다.

10년 전인 2004년, 한 상자 당 평균 34,000원을 호가하던 그 때의 반 가격도 안 되는 참담한 현실이다.
각종 농자재 값과 인건비는 지속적으로 상승하는데 반해 1년 동안 열매 하나하나에 10번이 넘는 손길을 주고, 자식처럼 애지중지하면서 피땀 흘려 수확한 배는 ‘빛 좋은 개살구’가 되 버렸다.

그는 “30년 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배 가격이 이정도로 폭락했던 적은 없다”고 연거푸 토로한다.
“현 정부에서 세금포탈 규제의 명목으로 과수농가의 유통 구조를 다 막아놨어요. 쉽게 말해 밭대기 중간 상인들의 활동을 못하도록 금지해 버린 거죠. 유통이 원활하지 못하다 보니 농민들의 판매시장 폭이 좁아졌어요. 요즘 인터넷 판매다 온라인 거래다 하는데 농가들이 그게 어디 쉽나요. 가격 역시 공판장 가격에 준해서 매겨지니 실질적 소득으로 이어지기 어려워요.”

“외국에서 수입된 각종 열대과일들이 비교적 싼 가격에 판매되고, 소비자들의 입맛도 그 흐름에 따라 가다보니, 그에 반해 국내 농가들은 더 힘들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을 탓하기에 앞서 농가들도 문제가 있어요. 남들보다 더 많은 양을 내놓을 욕심에 무분별한 농약살포와 과다한 영양제 사용에 상품의 질은 저하되고,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너무 많아져 가격도 내려가는 거예요.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자승자박이지요.”

선거철만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농민들의 대변자를 자처하며 ‘농민들을 위해 앞장서겠다’ 목소리를 내던 정치인들도 막상 당선이 되고 나면 본인들의 이익만 추구할 뿐, 농민들은 뒷전이라고. 무지한 농민들은 그저 그들의 당선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던 것일까.

 
 


이러한 농촌 현실 속에 그는 배움의 길을 택했다. 조선대 유기농 최고 지도자과정 수료를 거쳐 2007년, 한국 방송 통신대학교 농학과에 입학해 만학의 나이에도 불구 열심히 수학하며 4년의 시간 뒤 당당히 졸업장을 수여 받았다.

“농민들은 당장 오늘만 알고 오늘만 생각하며 내일 있을 일은 모른 채로 살아갑니다. 한마디로 체계적이지 못해요. 농학이란 반성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농사를 짓고 수확해 스스로 반성하며 내년에는 조금 더 나은 결실을 맺는 것이죠. 농사에는 공식이 없습니다.”
그는 현재 선호농장의 농장주이자 친환경 농업 컨설턴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2008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써내려온 영농일지는 그가 강조하는 농업의 체계성을 뒷받침해준다. 형편이 어려운 과수 농가나 초보 과수농가들을 직접 방문해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본인이 쌓아온 각종 노하우를 전수해주기도 한다.

“지자체에서 농민들을 대상으로 각종 농업연수와 교육을 실시하고는 있지만 매년 형식적이고, 반복되는, 아직 7,80년대 틀을 벗어나지 못한 느낌을 받았어요. 현실에 맞춰서 농민이 하나를 알더라도 제대로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끝으로 그는 “농민들이 마음 놓고 농사지을 수 있는 체계적인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합니다. 농산물 가격이 갈수록 폭락하고 있는데도 집행부는 지원은커녕 묵묵부답인 적이 많아 농민들이 분통하고 있습니다. 탁상행정이 아닌 농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오늘도 변함없이 그는 땀을 흘리고 있다. 한해 동안 피땀 흘려 수확한 농작물들이 제 가격을 받지 못한 채 창고에 차곡차곡 쌓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길거리에 보란 듯 적재되고 있는 비참한 농촌현실 속에 그가 강조한 것처럼 마음 놓고 농사지을 수 있는 체계적인 환경과 지원이 조성되길 바래본다.

손자가 탔던 낡은 유모차로 70년 평생을 논밭일로 꼬부라진 허리를 지탱하며 오늘도 논밭을 일구로 나가는 어머님들을 이따금씩 멍하니 바라보는 때가 있다.
지금 농촌은 많이 늙고 지쳐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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