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 속 나주에서 최초로 시작되었다는 자랑스러운 3가지가 있다.
나주 역사 중에서 우리의 역사문화에 관심을 갖고 키워 나가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되며, 작은 역사이지만, 매우 가치 있고 의미 있는 부분에 대해 나주시민들이 공유하는 차원에서 관보에서 발췌해봤다.
역사 속 벼농사의 기원은, 두 가지 설이 있는데, 중국대륙을 거쳐 전래되었다고 하는 북방설과 산둥반도에서 해로를 타고 한반도에 전래되었다는 설이다.
하지만 삼국사기 23권 백제본기에는 ‘다루왕 6년 2월 경 명을 내려 나라의 남쪽 주군(州郡)에 벼농사를 시작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볼 때, 그때부터 벼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전 목포대학교 총장이었던 고석규 박사에 의하면 “영산강유역은 한반도 쌀농사 문화의 발상지요. 전국 제일의 쌀 생산 지역이 되고 있다. 나주 가흥리 유적에서 검출된 화분이 이미 기원전 1,000여 년 전에 영산강 유역에서 벼농사가 시작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고 한다.
바로 벼농사의 효시가 나주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종 4년인 1473년 신숙주의 ‘성종실록’을 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장시(시장)의 발상지가 나주이다. 성종 원년에 흉년이 들었을 때 전라도 지방의 백성들이 스스로 모여서 시포(市脯)를 열었다고 한다. 풍부한 물산을 생산해 냄으로서 장시의 훌륭한 배후지가 되었던 영산강 유역과 장삿배의 통로가 되는 영산강의 뱃길이 있었기에 장시의 발상지가 된듯하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철근콘크리트구조로 건설된 금남동 나주신협 주변에 위치한 금성교는 국내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교량으로 알려졌다. 1910년대 건설된 다리지만, 난간석까지 있는 걸로 봐서 당시 큰 비중을 두고 공사된 다리로 보이며, 오늘 날 다리 밑을 보면 옛 골격위에 보강을 해 덧씌운 형태로 명맥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
이렇게 나주는 우리나라 역사와 천년 목사골의 자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