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남편의 전업주부 따라 하기

  • 입력 2014.11.10 14:02
  • 기자명 김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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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에서 수돗물소리에 자연스레 눈이 떠졌다.
지난밤에 26도로 설정해둔 난방모드를 해제하고, 문을 열고 나와 보니, 거실로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햇빛을 측면배경으로, 와이프가 아들 녀석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함평국화축제’ 견학을 간다 하여 김밥을 준비하고 있었고, 탁상용 시계는 7시 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쪽 씽크대 위에 김밥 재료가 줄맞춰 가지런히 누워 있고, 도마 옆에 제법 큰 주방 칼이 대기하고 있었다.
어제 김밥김 50장, 김밥햄, 단무지, 우엉 그리고, 아들 녀석 좋아하는 초코과자 2개 포함하여 만원 넘게 들여 마트에서 구입한 것이었다.

그냥 한 줄에 1500원하는 김밥을 3줄 사서 보내는 게 낫겠다고 말했지만 아내는 웃어버렸다. 나는 아직도 두어 시간 걸려서 직접 싼 김밥과 김밥집 아주머니가 정성스레 준비해서 파는 김밥과, 효용 가치를 비교해봤을 때 시간×비용×만족도의 차이를 정확히 계산해내지 못하겠다.

이후, 아내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햅쌀로 한 밥을 퍼서 그릇에 담아놓고 식히고 있는 사이, 잠옷 바람의 아들 녀석은 빨리 먹고 싶다고 옆에서 재촉했다.
와이프가 잠깐 여유가 생기자, 금세 달려들어 나무늘보처럼 매달려 손발을 꽉 낀 채 모자의 정을 깊게 나누고 있었다. 요사이 와이프가 회사일로 1박2일 워크샵에 다녀오느라 더 그리웠었나 보다.

나하고 있을 때는 말도 잘 듣고 고분고분하던 녀석이, 엄마만 있으면 나는 파워레인저의 악당이 되 버린다. 나중에 와이프 없을 때 태권도 겨루기 하자하고, 유도로 바꿔서 혼내줘야겠다.
아내가 먼저 출근하고, 나는 아들 녀석이 제대로 씻고, 옷 입게 하느라 20여년 전 군인정신을 되살려 훈련소 교관으로 빙의해 아들 녀석의 동작 하나하나에 초를 재고 살피고 지시했다.

자주 헷갈리는 팬티앞뒤구분하기, 옷 단추 꿰기, 바지 접힌 부분 펴기, 특히 가을용 양말신기에 신경써줘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 어느새 내 머리에 새치가 하나 둘 늘고 있다.
내년에 초등학교에 보낼 생각을 하니 자꾸만 미흡한 부분이 눈에 보여 여간 마음이 쓰인다.
귀엽게 옹알이하고 기어 다닐 때가 엊그제 같은데, ‘사회화’ 교육을 준비시키려 하니 매사가 다 부족한 것 같다.

특히, 물을 틀어놓고 욕실에서 놀기, 칫솔물고 돌아다니기, 세수할 때 소매 젖는 것, 다 씻었다고 나왔는데 콧구멍에 물기를 품은 코딱지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을 때, 화가 나기도하고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언제 사람이 되려나?

애들용 ‘모이스쳐 라이징’ 로션을 듬뿍 발라주고, 선크림을 꼼꼼히 발라준다.
안했다간 오전 출근한 아내에게서 불시에 확인문자 온다. “로션은?, 썬크림은?, 잠바는?” 애에 관하여 관리가 안됐을 때 닥칠, 후환이 두렵다.

군대에서 취침 전 점호가 싫었다. 특히 꼬장꼬장한 인사계, 그날 기분이 안좋은 당직사관들이 그랬다. 가끔 아내가 그날의 상관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무섭다.

천신만고 끝에, 아들 녀석을 어린이집 차량에 태워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파트 공사현장내의 거푸집에 두드리는 망치소리가 종소리처럼 메아리쳐 울려댄다. 진입로로 덤프트럭이 질주하는 소리, 크레인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소리, 레미콘차량의 시멘트 퍼내는 소리가, 호수주변 대기에 가득한 채, 태양은 처녀지 빛가람을 밝게 비추며, 오늘 아침도 힘차게 도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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