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평읍 지역발전협의회(회장 강재수)와 남평 여성산악회(회장 정금례)가 공동 주관한 '월현 대산 해맞이' 행사가 눈보라가 치는 새해 1월1일 새벽 6시부터 윤정근 시의원, 김용출 남평읍장, 최공섭 남평농협조합장을 비롯한 기관단체장, 읍사무소 계장급 이상 공무원, 지역주민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남평 월현대산 일대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남평여성산악회 회원들이 나와 눈보라가 치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해맞이 행사 참석자들에게 따뜻한 떡국을 대접하여 새해 첫날 훈훈한 정을 나누었으며 관내 광일식품(사장 조문호)에서는 참가자들에게 고급 과자 10박스를 보내와 참가자들에게 작은 기쁨을 주었다.
궂은 날씨로 인해 일출은 보지 못했지만 따뜻한 남평의 정을 나누고 이 지역의 밝은 내일을 확인할 수 있는 의미있는 행사였다.
이 산 정상에는 삼촌인 수양대군에게 왕위에서 쫒겨나 폐위된 단종 임금이 치재(恥齋) 정극융(丁克隆) 선생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신의(臣義)로 이곳 남평 초야에 묻혀 여생을 마쳤는데 1457년 세조 3년에 단종이 다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降封)되어 강원도 영월에 칩거하자 선생은 식음을 전폐하고 성덕산에 올라 멀리 영월을 향하여 망배 통곡하니 당시 영평현(現 남평) 사람들은 물론 산천초목도 같이 슬퍼하였다는 것이다.
그해 가을 금성대군(錦城大君) 유(瑜)가 경상도 순흥(順興)에서 단종 복위를 모의하다 발각되고, 그 화가 노산군에 미쳐 서인(庶人)으로 몰리고 마침내 그해 12월 4일 단종께서 승하하시니 엄동설한인데도 불구하고 산정에 올라 멀리 영월을 향하여 통탄하고 3년을 하루같이 복상하였으며 또한 일생동안 매년 제일(祭日) 아침에는 산에 올라 분향 망배하고 단종을 추모하니 당시 사람들은 그 절의에 감탄하여 이곳을 월현대(越峴坮)라 칭하였다.고 한다.
정극융 선생은 사간공(司諫公) 벼슬을 버리고 이곳 영평현(現 남평)으로 낙향하여 남평 사람들의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정신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월현대성각 위 제단에서 500여년동안 정월 대보름날 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2012發刊 南平邑誌 발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