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야독’은 이런 것, 낮에는 집배원 밤에는 서예공부

왕곡면 임종배 씨 ‘취미 삼매경’에 빠지다

  • 입력 2015.11.16 13:17
  • 수정 2015.11.16 13:18
  • 기자명 이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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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야독(晝耕夜讀)’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공부한다는 뜻으로 바쁜 틈을 타서 어렵게 공부함을 이르는 말이다. 숨 가쁜 일상 속에서 자신의 업을 마친 뒤, 아직 끝나지 않은 자신의 삶을 위해 무언가에 시간을 투자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나주에서 집배 업무만 30여년 째 담당해오고 있는 왕곡면 임종배 씨(57). 그는 3년 전부터 주경야독 삼매경에 빠져있다. 오직 한 가지 일에만 마음을 집중시키는 경지를 일컬어 삼매경이라 하니, 나주 시내 한 서실에서 마주친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삼매경을 방불케 했다.

 
 
그는 ‘서예’ 공부 중이다. 3년 전, 어느 날 문득 ‘나이 먹어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뭘까’ 고민하던 찰나에 그는 서예 공부가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진 않을까하는 생각을 갖고, 무작정 서예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섰다고.

수소문 끝에 찾아간 곳은 바로 이 지역 서예 장인으로 손꼽히는 죽봉 박천호 선생의 서실.
한 주에 4~5번 그러니까 거의 주중이면 매일 서실을 찾는다는 종배 씨. 집배원 업무가 끝나는 오후 6시 30분쯤 서실을 찾아 2시간은 족히 서예 연습을 끝내고나서야 비로소 그의 하루 일과가 끝이 난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처럼 예능에 타고난 소질을 보였던 그는 원래 화가나 소설가가 꿈이었단다. 하지만 그는 “길이 너무 멀고 그냥 접어버렸지요”라 시원스레 대답했다. 그렇다고 그 재능이 어디로 가겠나. 54세 늦깎이 나이 때 입문한 서예는 그의 취미이자 소중한 벗이 됐다.

 
 
“서예는 자신만의 도를 닦는다 할까요. 정신수양에 큰 도움이 됩니다. 서예에 입문하고 나서부터는 사회와 가정생활에 인내하는 법도 깨닫게 됐고, 붓을 잡고 글자 한자 한자 써 내려 갈 때면 내 자신의 덕을 쌓는 그런 기분이 듭니다.”

서예 스승인 박천호 선생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칭찬일색이다.
“서예란 자고로, 무거운 짐을 지고 높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지요. 즉 꾸준히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르치면서 단 한 번도 힘들다거나 지겹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단기간 이 정도의 실력을 쌓고, 대회 특선을 할 정도면, 어느 수식어를 붙여도 모자람이 없을 것입니다. 형제들뿐만 아니라 집안 대대로 글쓰기에 소질이 있다고 들어서 인지, 예능 쪽에 탁월한 소질과 재능을 갖고 있어요. 참 대단합니다 허허”

호탕하게 웃음 짓는 스승을 바라보며 그는 무척이나 쑥스럽다는 듯 연신 고개를 숙이며, 다시 붓 끝에 집중한다. 그런 그를 보며 스승은 다시금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법첩’을 중시하여 서법을 공부하길 바랍니다. 즉, 윗대 명필들의 글씨를 본받아 공부하라는 것이죠”
그는 올해 제 51회 광주전남 서예대전 한문부분(해서체)에 ‘특선’을 수상했다. 입문 후 3년여만에 실로 대단한 금자탑을 쌓은 격이지만 아무래도 서예 자체가 다수 시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장르는 아닐 것이기에 못내 아쉬움만 남는다.

“집배업무 중에도 만나는 이들에게 서예 한번 배워보라고 홍보도 많이 합니다. 꼭 제가 다니는 서실이 아니더라도 꼭 한번 찾아 배워보라구요. 사실 나주에서는 서예 모임이 활성화됐다고 보기엔 좀 무리가 있거든요. 전체적으로는 서예에 관심도 있고 실제로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신수양과 자기 자신의 교양 쌓는 데는 서예만한 것이 없거든요. 이번 신문을 계기로 서예와 시민들이 친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요”

인생에서 취미처럼 즐거운 것이 있을까. 누군가 그랬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생활과 취미가 혼연일체(魂然一體)하는 사람’이라고. 사회가 바쁘고 현대인의 생활이 지루해져만 가고 메말라 갈수록 우리의 정신의 안식처가 되고 기쁨의 샘터가 될 취미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한다.
문득 오늘 종배 씨의 모습에서 진심으로 우러났던 ‘취미 삼매경’이 부러웠던 건 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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