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

  • 입력 2019.08.21 15:06
  • 기자명 박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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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도시가 나주로 확정되었을 때 나주는 새로운 미래백년의 기틀을 마련했다며 온 시민이 혁신도시 유치 환영대회를 열었다.

공기업이 얼마나 큰지, 근무인원은 몇 명이나 되는지, 원도심과 신도시의 위화감이 얼마나 클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더 이상 쇠퇴하지 않은 나주시로서의 비상, 그것이면 충분했다.

여기에 인근 6개 시군지역 쓰레기를 고체로 만들어 나주로 가져와서 발전소 원료로 사용하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대신 나주지역 음식물 쓰레기는 타 지역에서 처리했기에 많은 이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게다가 하루에 처리하는 쓰레기 용량도 100여톤으로 형태도 RDF(고형폐기물)이었다. 즉 나주로 반입되기 전에 쓰레기연료를 생산지역에서 고체로 변형시켜 들어오는 조건이었다.

그렇게 나주는 들뜬 상태에서 혁신도시가 들어서기 시작했고 타 지역보다 월등하게 빠른 성장을 보이는 빛가람혁신도시에 대한 자긍심도 높아졌다.

다른 신도시는 10년에서 20년 걸리는데 나주혁신도시는 5년밖에 안걸렸다는 자부심의 뒷담화가 넘쳐났으며 하루가 다르게 변화해가는 빛가람동은 나주 원주민들에게 신기루처럼 느께지기도 했다.

그렇게 나주혁신도시는 부푼 꿈을 안은채 오늘에 이르렀지만 이제 쓰레기 도시라는 또다른 불명예를 안고 말았다. 심지어 광주지역 쓰레기처리장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고 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미래백년의 성장동력을 얻었다며 온 시민이 들고 일어나 환영했던 혁신도시가 어쩌다가 다이옥신의 공포가 감돌고, 학부모들의 등교거부, 일부 범대위 회원들의 막말, 사회단체간의 격렬한 적대감까지...

어쩌다가 기회의 땅, 희망의 땅 혁신도시가 이렇게 됐을까?
알고보면 간단하다. 당초 모두가 합의했던 내용이 슬그머니 사라지고, 일부에서 꼼수 또는 불법으로 당초 합의사항을 어겼기 때문이다.

난방공사는 당초 계획했던대로 열병합발전소를 운영하는 것보다 광주지역 쓰레기까지 포함해 가동하는 것이 이익이었고, 그것도 모자라 광주지역 쓰레기처리업체에 지분까지 투자해 꿩먹고 알먹기라는 탐욕을 부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당초에는 쓰레기를 고체형태의 연료로 만들어서 나주로 와야하지만 이것도 비성형으로 바뀌게 되면서 모든 것이 철저하게 난방공사의 이익에 방점을 두고 바뀌어져 왔다.

그리고 그러한 사업방식 변화에 주민들의 의견이 끼어들 틈은 전혀 없었다.
그 흔한 사업설명회나 공청회 하나 없었다.

달랑 공문으로 전남도와 나주시에 통보했고 여기에 전남도나 나주시가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이 오늘의 사단을 부른 것이다.

주민들에게 사전에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고, 온갖 유사한 실험을 통해 안전성을 확보해도 될까말까한 사업을 철저하게 비공개로 은밀하게 추진하다가 주민들 반발에 부딪힌 사업이 바로 나주쓰레기 열병합 발전소의 전말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그렇게 추진한 사업에 수천억원이 들어갔으니 사업을 못하게 하려면 투자비를 책임지라고 한다.

난방공사 이사회는 자신들의 불법과 탐욕이 부른 참사를 두고 전남도와 나주시에게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뻔뻔하게 버틴다.

그렇게 하다보니 마치 반대했던 혁신도시 주민들이 인질이 된 기분이다.
주민들이 이렇게 반대하니 그동안 투자한 비용을 공동으로 책임지자는 난방공사의 요구에 전남도와 나주시가 슬그머니 동의하는 분위기다.

책임소재도 명확하게 하지 않고 은근슬쩍 공동책임 운운하는 것은 나주혁신도시를 두 번 죽이는 꼴이다.
쓰레기연료 사용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인질이 아니다. 반대하는 이들을 인질로 삼고 자신들의 탐욕이 초래한 과오를 슬그머니 덮고 전남도와 나주시에게 뻔뻔하게 공동책임을 요구하는 난방공사야 말로 진짜 소각해야 할 쓰레기다.

진짜 소각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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