梨花에 月白하고 !

  • 입력 2023.04.06 15:48
  • 수정 2023.04.07 05:44
  • 기자명 정순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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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단비 머금은 배꽃 절정(나주시 제공)

 

다시 순결한 배꽃이 나주 들녘에 지천이다.

정순남(사회적협동조합 전남사회혁신네트워크 이사장)
정순남(사회적협동조합 전남사회혁신네트워크 이사장)

인간은 본능적으로 무구한 자연의 매력에 이끌린다. 자기 정화를 위한 무의식 이 작동하는 것이리라. 겨울의 끝자락 2월 말이면 섬진강 변 매화꽃이 향기를 더하고 구례 산동의 산수유가 노랗게 지리산 끝자락을 밝힌다. 팔도에 진달래, 개나리, 벚꽃이 무시로 피고 지고 할 즈음 드디어 영산강변에 들불처럼 피어나는 배꽃은 누나들의 자태처럼 소박하고 화향이 그윽하다. 가뭄 끝 단비라도 오면 이 하얀 누이의 자태는 황홀하기까지 하다. ‘梨花에 月白하고’라고도 했다.

70~80년대 배 과수원은 풍요의 상징이자 나주 농부네 아들들을 위한 학자금의 원천이기도 하였다. 당시만 해도 교육에 있어서만은 남녀가 유별하였다. 영산강 들녘에 가뭄과 홍수가 빈번하던 시절에도 희디흰 배꽃은 피고 지고를 반복하면서 농부들의 가슴에 미상의 단호한 흔적들을 남겼다. 일설에 의하면 영암 해남 영광 등 서남해안 쪽에서 불어온 해풍이 영산강을 만나 소금기가 가시는 지점이 나주 언저리라고 한다. 해풍과 육지풍이 서로를 어루만지고 물빠짐이 좋은 나주에 유독 배 과수원이 많은 이유라는 것이다. 지금은 온난화의 영향으로 전국에 배가 재배되지만, 당시 나주 배는 사회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하였다. 유명세를 탄 나주 배는 영산강 젊은이들이 광주나 인천, 서울 등 도시라는 대천으로 나가게 하는 뒷배이기도 했다.

토양은 터전에 사는 자연과 인간의 삶을 정의하기도 한다. 유난히 의병을 많이 배출한 나주는 하얀 배꽃으로부터 잉태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해본다. 당시에 배라는 작물이 재배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유난히 하얀 빛깔에서 정화된 정신은 한점의 불의도 용서하지 않는 저항의 힘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최근에 나주 중심 마한의 역사가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한반도에서 가장 비옥한 나주평야를 중심으로 공동체가 형성되었으리라는 것도 미루어 짐작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문명의 시작은 강과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삼각지에서 태동하였다. 어쩌면 나주 마한의 땅은 배꽃처럼 억압이 없는 땅이었을 것 같다.

봄비에 지천으로 피어난 배꽃의 예단된 운명에 마음이 아린다. 꿀벌들이 사라지고 문명의 힘이 무차별하게 이 순결하고 하얀 꽃들을 향해 칼날을 겨누고 있다. 이를 지켜내는 것 또한 배꽃의 후예들인 우리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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