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그리고 '영산강 글로리'

  • 입력 2023.05.22 10:36
  • 수정 2023.05.22 10:52
  • 기자명 정순남(동신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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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헤어질 결심’은 과거와 현재까지 시나브로 쌓인 사랑과 미래에 다가올 관계에 대한 서사다. 예단된 그리움을 놓치지 않기 위해 주인공 서래의 죽음이라는 이율배반적 선택을 그린 영화 같아 보인다. 안개라는 주제곡도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과 닮았다. 반면 영화 ‘더 글로리’는 인간의 감성이 최고조에 달할 즈음의 청소년기 학폭에 얽힌 야기다.  동급생들에게 시달렸던 문동은이 박연진 일당에 대한 복수를 통해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 카타르시스 적 성격의 드라마다. 前者의 메시지는 상당 부분 관객에 의해 해석되도록 은밀하게 기획되었다. 복수의 수준에 대해 다양한 토론의 영역으로 대중들을 배회하게 만든다. 後者는 극명하게 정의된 사회악을 응징하는 과정을 치밀하게 그려내고 심지어 2부는 시청자의 기다림에 대한 인내심을 자극하기까지 한다. 드라마 제목을 ‘글로리’로 못 박은 제작진의 의도는 다분히 약자의 복수에 대한 스토리의 과정과 결말을 영광(글로리)이라는 정당 방위적 성격으로 옹호하고 있다.

IMF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직전 무렵 미국 중북부 도시 메디슨에 잠시 머물렀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울 무렵 당시 내가 살던 곳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어느 농부의 집으로 초대를 받았다, 이들 노부부는 자식들이 멀리 시카고나 뉴욕 등 대도시로 떠나고 둘이서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연방제도가 자리 잡은 미국마저도 이미 지방 도시의 소멸이 본격화되고 있음을 직감하였다. 메디슨은 지평선이 보이는 끝없는 옥수수밭과 빙하가 만든 그림 같은 호수의 땅 위스콘신주의 수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젊은이들의 ‘도시의 글로리’를 향한 지역과의 ‘헤어질 결심’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무모하기 때문에 젊음은 아름답다. 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나주를 비롯한 전라도, 호남을 떠나 서울로 향한 젊은이들의 이탈은 90년대 이후 대한민국 5천 년 역사에서 가장 글로리 한순간을 만들어 냈다. 최빈국이었던 한국이 분단의 역사 속에서도 세계 10대 경제 강국을 만들어 낸 것이다.

‘헤어질 결심’은 때로는 치명적 물리적, 심리적 상처를 남기기도 하지만 영광(글로리)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전남은 대표적 소멸도시로 분류되고 있다. 그 대신 대한민국 역사를 빛나게 만들었다. 역사는 반복되고 원심력과 구심력이 작동하면서 결국 무위자연으로 수렴된다. 나주를 떠난 이들의 결심은 다시 돌아오기 위한 여정이었음이 분명하고 머지않아 ‘나주 영산강 글로리(영광)’로 이어질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사실 그러한 전조들이 보여지고 있기도 하다. 지방소멸이니 소멸도시라는 상처를 주는 주변의 난무하는 조어들은 지역의 영광을 예고하는 또 하나의 표현일 뿐이다. 굳이 해석을 덧붙인다면 수도권을 향한 지방과 헤어질 결심은 조국의 더 글로리를 가져왔다. 다시 인간의 본능적 구심력에 따라 이어질 수도권과 헤어질 결심은 지역의 부활을 예고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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