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도시 혁신하기 : 모든 금지하는 것들을 금지하라 !

  • 입력 2023.05.30 11:53
  • 수정 2023.05.30 11:55
  • 기자명 정순남 (동신대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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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창조적(creative)인 도시는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라고 한다. 자유로운 분위기, 다양한 문화적 수용성, 규제 혁파, 도전적 모험가 정신, 혁신기업의 탄생, 예술적 영감 등이 상호 역동적으로 작용하면서 끊임없이 창조적 역량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이다. 지금도 금기의 눈으로 보여지는 게이와 레즈비언이 가장 많은 지역도 샌프란시스코라고 한다. “모든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가 이 도시의 무언의 메시지라는 것이다. 지나친 표현일지 모르지만 영산강도 바다의 입구, 목포 하구에 이르러 흐름을 금지당한 것이다.

SNS가 일상을 지배하는 문화 속에서 금지하고 규제하고 조언하고 압박, 홍보하는 유무형의 현수막이 난무한다. 나주혁신도시도 예외는 아니다. 예컨대, 반려견이 이미 일상화된 지금에도 목줄묶기, 배설물 제거, 입마개 착용 등의 현수막이 거리, 공원마다 넘쳐난다. 우리 의식과 무의식을 압박하여 반려견이 가져올지도 모르는 창조적 정신세계의 획장을 좀먹고 있다. 반려견으로 인한 다툼이 끊임없이 과장된 뉴스로 등장하고 있다. 미국에서 여러 해를 살면서 반려견에 대한 경고성 부정적 현수막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반려견과 같이 산책하거나 운동하는 이들이 이웃들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마을에 행복한 기운을 스며들게 하는 것처럼 보여졌다.

 

창조행위는 인간의 사고영역이 자유롭고 유연하게 작동할 때 무의식적이건 의식적이건 그림자처럼 영감 속에서 표출되고 드러난다. 큰 틀에서 보면 유교의 영향에 절대적으로 노출된 한국 사회는 유독 외부의 시선과 예의범절을 강조하는 문화를 확대 재생산하여 왔다. 고려시대 불교문화를 대신하여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 중앙집권적 시대 통치이념으로 숭유억불 정책이 국가적 어젠다로 채택되었다. 유교적 규율이 생활방식으로 스며들고 상당히 정교한 교육시스템이 들어서면서 국민들의 의식 수준과 기술 수준이 급격히 높아지는 순기능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세계사적으로도 단일왕조가 500년 동안의 지배역사를 유지한 사례가 드물다, 절대 왕조 아래에서도 임금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여 통제하고 감시하여 나라의 기강을 확립한 유교적 철학이 기여한 바가 지대 했던 것이다. (지도자의 일탈을 상소하는 아니 되옵니다의 문화는 지금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일제 강점기의 억압정책과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500여 년에 걸친 다져지고 축적된 문화적 역량은 70년대 이후 급격한 산업화 정책으로 이어졌다. 이제 한국은 10대 경제 강국으로 5천 년 역사상 가장 거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최근 대통령이 G7 회의에 초청될 정도로 국가의 위상이 한껏 높아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교적 관료적 문화는 창조적 혁신적 사고의 여지를 저해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도 사실이었다. 시대정신은 과거에 대한 집착과 단절을 뛰어넘는 각오를 필요로 한다.

나주혁신도시는 대한민국 위상의 정점에서 태어났다. 역설적으로 모든 정점에 이른 것들은 쇠락을 예고하고 있다. 후발주자의 추격 주의(follower) 전략이 더 이상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역사의 교훈에 따라 선도자(first mover)전략으로 방향 전환을 해야만 했다. 세계 경제와 문화를 이끌고 있는 나라는 여전히 미국, 유럽과 중국이다. 미국은 유럽의 종교적 핍박을 피해 왔던 자유로운 영혼들이 정착하여 전 세계에 끊임없이 창조적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중국은 유교적 전통도 강하지만 인위적 질서를 거부하는 도교적 창조적인 세계의 바탕이 강한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혁신도시는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산물로 포장되었지만, 상대적으로 인재들이 집중되어 있는 거대 공기업을 지방으로 이전하여 혁신의 거점으로 삼겠다는 혁신클러스터 정책의 일환이었다. 자칫 소멸도시라는 파도에 휩쓸릴 뻔한 나주도 혁신도시 지정으로 인하여 전남도에서 순천, 여수, 목포, 광양에 이어 인구 12만여 명의 살만한 도시로 도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태생적으로 공적인 영역은 변화와 모험을 시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안전한 경로를 택한다. 최근 혁신의 아이콘으로 만든 혁신도시 출생의 비밀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나주혁신도시도 예외는 아니다. 에너지 수도 의무를 표방하고 이전한 한전 등 에너지 공기업은 엄청난 규모의 빚더미에 허우적거리고 있다. 중앙정부의 경영평가와 국회의 국정감사라는 강력하다 못해 질식할 것 같은 규제, 전기요금 규제, 신재생에너지 의무 공급 등 유무형의 구속적 부자유 굴레가 혁신을 저해하고 있는 것이다. 나주혁신도시가 혁신의 길로 나가게 하는 다양한 시도는 시민주도 혁신 노력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를 구속하고 억압하고 “금지하는 것들을 금지하여야 하는 것”이 첫 번째 노력일 것이다. 축적된 시민의 창조적 역량은 나주혁신의 원동력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창조와 혁신은 여백을 필요로 한다. 다행히 혁신도시 공기업 주변으로 상당한 물리적 여백과 여유로운 시민들의 발걸음에서 심리적 여백을 발견하였다. 개인, 시민사회, 행정(자치단체), 정치의 영역이든 변화와 혁신을 게을리하는 순간 예외 없이 쇠락하는 길을 걷게 된다. 특히, 가까이 화순에 유배왔던 조광조처럼 시대적 위기를 진단하고 개혁을 추구했던 인물들을 죽음의 길로 몰아야만 했던 역사는 안타까움을 더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오늘이 마침 부처님 오신 날이다. 감히, 사적인 상상력을 더하자면 인도의 극단적 인종차별적 계급주의 카스트제도로 신음하던 시절에 부처님에 의한 불교 혁명이 일어났고, 로마제국의 폭력적 통치하에서 혁명가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스럽던 춘추 제국주의 분열의 시기에 공자님의 유교 혁명이 있었다. 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주혁신도시(비단 혁신도시뿐만은 아니다)의 혁신이 필요한 시기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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