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천 뱀장어의 귀환을 기다리며 !

  • 입력 2023.06.05 10:50
  • 기자명 정순남(동신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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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리 병풍산에서 발원한 봉황천은 운곡, 장성백이, 홍굴, 오림, 마음, 욱곡마을 앞을 돌아 영산포 입구에서 영산강 본류로 합류한 것으로 보인다. 교통수단이 거의 없었던 시절이라 직접 가보진 못했지만, 지형상으로 판단해 보건대 그러하였으리라 짐작한다. 여름이면 포플러 나무 아래서 미역을 감고 간짓대에 낚싯줄을 묶어 붕어를 낚기도 하였다. 나주호가 생기기 한참 전이라 농사에 쓸 물이 늘 부족하였다. 가끔 이웃 동네 사람들과 물싸움이 벌어져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당시 물 부족은 심각하였다. 그래서인지 봉황천 곳곳에 양수기가 설치되어 부족한 물을 공급하였다.

경운기 엔진을 작동하여 양수기에 전달된 동력의 힘은 참으로 경이로웠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야기지만 양수기의 감동적인 첨단기술은 커서 과학자가 되어야겠다는 막연한 꿈을 꾸어 보기까지 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그 시절 강처럼 거대해 보이던 봉황천의 물이 소진될 무렵 나타난 은빛 찬란한 미끈한 뱀장어의 출현은 하이라이트였다. 때로는 구렁이만 한 거대한 뱀장어가 나타나 어른들의 기쁜 함성에도 그 징그러움에 놀라 도망을 치기도 하였다. 나중에야 뱀장어의 생애를 배우긴 했지만 지금도 수위가 낮아진 봉황천의 구멍에서 스멀스멀 얼굴을 내밀던 뱀장어의 기억은 생생하다.

어른이 되고 한참이 지나서야 지금의 구진포가 장어로 유명하다는 야기도 들었다. 서울에서 온 손님 접대차 딱 한번 구진포에서 장어구이를 먹어봤다. 더 이상 장어를 먹지 못한다. 장어의 경이로운 생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면 지나친 격식이었을까! 지금의 영산강 하구언 목포 바다 너머에서 수백 리를 거슬러 올라온 장어의 회귀를 생각하면 그 생명력에 존경심을 표하고 싶어진다. 지오그래피같은 다큐가 흔해진 시대에야 연어의 모천회귀, 뱀장어나 바다거북, 향유고래의 귀향 본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뭇짐승들의 본능이라고 치부하기엔 인간의 판단영역을 넘어서는 것은 아닐까 싶다.

유년 시절 뱀장어가 준 생명력에 대한 암묵지(taciturn knowledge)는 강렬하였다. 강원도 어디에서 열린다는 세계적 축제라고 극찬한 산천어축제나 빙어 축제, 연어 축제 등을 단호히 거부하는 SNS 댓글을 열심히 올리기도 한다. 생명을 경시하는 모든 것에 대해 특히, 축제의 형태로 포장한 생명을 무시하는 행사에 대해 병적인 거부감을 갖게 되었다. 친환경을 상징하는 ESG 경영이 산업계의 화두가 되었지만, 아직 돈벌이가 되는 축제의 평가척도로는 칼날이 무딘 모양이다.

가장 완벽한 기억의 봉황천은 가을이었다. 윤기 나던 포플러 잎이 노랗게 변색하면서 방출하는 진한 탄닌 냄새를 잊을 수 없다. 고향을 지키는 병사들처럼 줄을 맞춰 바람에 흔들리던 노란 포퓰러의 행렬은 영산포라는 大處 쪽으로 흘러간다고 형들은 말했다. 나에게 탄닌 냄새는 가을을 예고하는 전조 같은 기억을 가져다준다. 저녁 산책길 뒤쪽은 온통 플라타너스다. 서양에서 온 이 나무, 플라타너스의 향기는 포퓰러의 탄닌 냄새보다 좀 더 진하다. 고향을 떠난 이역의 나무가 가끔은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이다.

나 또한 30여 년 동안 서울의 이방인이었다. 최근에야 모천(母川)으로 주소를 옮기고 몇 날을 살았지만, 혁신도시라는 생경한 이름은 나에게 아직 서울만큼이나 낯설다. 태어나고 20대까지를 보냈던 고향인데도 선뜻 봉황천 근처 마을의 변두리조차도 다가가지 못했다. 실개천마저도 지켜내지 못한 죄스러움인가 보다. 70년대 중반 나주호 지하 물길을 만들고 봉황천을 메우던 기계음이 아직도 가슴을 저리게 한다. 가끔 코를 킁킁거리며 현실에서 사라진 봉황천과 은빛 찬란하던 뱀장어의 귀환을 그려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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