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죽음에서 생명의 자연으로!

  • 입력 2023.07.18 13:25
  • 기자명 정순남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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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수남 동신대 석좌교수
        정순남 동신대 석좌교수

일본에서나 있을 법한 고령화 추세가 한국의 곳곳에서 지방소멸, 산업 인력부족을 넘어서 심각한 국가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추석이나 설 명절이 되면 양로원이나 요양시설을 방문하곤 하였다.

돌봄 자녀들의 부재나 어른신들 돌봄의 포기, 장기요양보험의 제도화 등 다양한 사유로 이동의 자유를 상실하거나 치매 어르신들의 마지막 이생의 거쳐가 되어가고 있다. 요양원은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까지 부르게 되었다.

우리들도 언젠가는 노화와 병마와 예정된 죽음의 묷음은 수퍼마켓 라면 뭉치처럼 통째로 노인 요양시설로 팔려 갈 것이다. 거기로 가는 순간 이미 살아있는 내가 아닌 죽은 자로 퉁쳐지고 잊혀져 간다. 3년여에 걸친 코로나로 요양원에 계신 부모님들의 면회금지의 기억은 상업적 동기와 인간의 본능과 결합 이러한 고립추세를 더해가고 있다. 살아있는 생명체이되 죽지 못하는 ‘금지된 죽음’이다.

빌딩마다 카페가 생기던 시절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새로 지어진 건물지하마다 헬스클럽이 위치하고 있다. 요즈음 가장 취업이 잘되는 학과가 생활체육학과라고 한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피할 수 있기라도 하듯 사람들은 의욕적으로 운동을 하고 아파트 게시판에는 개별 맞춤형 운동 프로그램 찌라시가 홍수를 이룬다.

주말이면 근교 산들은 지하철에서 쏟아져 나온 중노년 등산객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다. 동네 산책로 마다 워킹족들로 붐비고, 파크 골프장엔 신중년과 노인 어르신들로 넘쳐난다. 작은 공원이 생기고 공원마다 크고 작은 운동기구가 자리잡고 있다.

금지된 죽음으로 가는 여정이 극명하게 들어날 때마다 각종 건강보험 광고가 난무한다. 금지된 죽음의 금지 ‘해제순간’을 노린 각종 상조보험 광고를 볼때마다 가슴이 저린다. 보모님의 소천을 가족의 가슴으로 보듬던 시절은 먼 옛날이 되었다. 우리들의 말년은 하나의 상품으로 낮선 사람들에게 공공연히 팔리고 있는 것이다.

도시주변에 무수히 생겨난 효사랑병원이나 효요양병원 등 요양시설은 금지된 죽음을 수용하는 합법적 교도소다. 살아가야 할 사람과 죽어가야 할 사람들의 갈등의 완충제도 같은 것이다. 이미 고령층은 저출산이라는 젊은이의 특권을 강조하는 사이 병마와 노화로 사회적 부담을 안겨줄 뿐인 거추장스런 존재로 전락한 것이다,

죽음은 이미 돈으로 치환되는 사회제도 속으로 스며들었다. 병원에서 요양원으로 다시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시스템으로 굳어지고 정작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작은 순간의 귀찮음으로 축소되어 버렸다.

죽어 가는 사람에게 주어져야 할 의미가 무엇이며, 죽어 가는 사람 또한 애틋한 삶이 있다는 것이 무관심화 되는 것이다. 결국 죽어 가는 사람의 수십년의 삶의 의미가 해체되고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홀로 방치된다는 점에서 우리시대가 죽음을 대처하는 방식은 크게 훼손되었다.

타인의 죽음이 아닌, 바로 자신의 죽음일 때 죽음은 우리를 고뇌에 차게 만드는 것이다. 금지된 죽음이 아니라 ‘해제된 죽음’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것이다.

무담시 나주의 마을을 돌아다녀 본다. 만나는 분들이 제대로 허리를 펴지 못하고 먼 시선으로 나그네를 쳐다본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다. 도시로 떠나간 아들딸들의 관심에서 이미 멀어져간 우리들! 의료기술과 보험제도의 발달은 금지된 죽음의 시기를 연장하고 더 치명적인 공간으로 우리를 밀어 넣었다. 살아있음에 대한 기억조차도 멀기만 하다.

약 300명의 한국인이 조력사망을 돕는 스위스 4개 단체에 가입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2019년 3월 최초 보도했을 당시 한국인 가입자 107명에서 3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우리도 이제 진지하게 ‘금지된 죽음’을 ‘자유로운 죽음’의 영역으로 되돌려야 한다.

출산률 저하를 막기 위해 10여년간 186조라는 돈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어느 마을은 출산 축하금을 높이고 마을 육아공동체를 만들고 공짜에 준하는 임대주택을 제공한다고 한다.

그러나 금지된 죽음을 야기하는 논의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안락사, 웰다잉, 의사의 조력을 받아 죽을 권리 등은 국회 세미나실이나 대학병원에서 불편한 시선속에 논의된다. 이미 전남은 전국 최고령화(21.4%) 시대에 접어들었다. 혁신도시를 제외한다면 읍면지역의 거의 절반이 사라질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마을 군데군데 파고드는 상업적 요양병원과 언제가 거기서 금지된 죽음을 맞아야 하는 우리들의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출산률 저하를 걱정하지만 한국의 인구밀도는 아직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가 더 심각하게 걱정해야 할 것은 지금의 고령화된 우리의 남은 시간을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보내는 것이다.

치유농업, 정원 가꾸기, 전통농업의 부활, 젊은 세대와 노인세대의 공존 프로그램, 도시농부 플랫폼 사업, 농촌 빈집활용 시니어 사업 등 이미 시행되고 있는 다양한 사업을 보완하고 고령화세대의 참여를 활성화하여야 한다. 한국은 OECD 노인 빈곤률 1위국가다. 더구나 전남은 재정자립도가 전국에서 가장 낮다(21.7%). 지자체와 시민사회는 어르신들의 삶을 보살피고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위한 특단의 노력해야 한다.

영산강의 젖줄을 따라 새 생명이 탄생하듯 금지된 죽음이 해제되고 파릇파릇한 생명의 땅으로 태어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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