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사회와 불편한 진실, 그리고 나주!

  • 입력 2023.08.14 20:51
  • 수정 2023.08.16 10:54
  • 기자명 정순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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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남 동신대석좌교수
정순남 동신대석좌교수

국민적 공분에 휩싸인 새만금 잼버리 행사가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K-행정과 K-팝 등에 힘입어 퇴영식을 갖고 마무리되었다. 극한호우와 극한폭염이 반복되는 기후위기속에도 여야의 거친 책임 공방이 오가고 정치는 여전히 국민의 인간다운 삶의 문제에 무관심한 듯하다.

누적된 정치적 광기와 사회적 분열의 파장은 여유롭던 사회를 점점 거친 코너로 몰아가고 ‘묻지마 살인’이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지경에 이르게 하였다. 최근 서울 신림동에서 분당 서현역에 이르기까지 다중을 상대로 무차별 흉기를 휘둘러 사망에 이르는 사건이 빈발하고 있다. 하루에도 SNS를 통해 유사한 사건을 예고하는 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불안한 긴장감이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나주사회도 더 이상 예외는 아니다. SRF열병합발전, 나주교통, 골프장건설, 영상테마파크 철거와 의병박물관 건립, 한국에너지공대 등을 둘러싸고 건강한 소통과 대화 대신 분노의 언어가 난무한다. 출산률 저하, 고령화 사회와 지방소멸로 이어지는 변화의 극단에 불안심리가 꽈리를 틀고 있다.

혁신도시가 들어서면 한결 나아질 것 같은 나주인의 삶과 기대는 무참히 무너졌다. 부동산 투기세력, 단기성과에 집착한 정부정책과 20여년에 걸친 지속된 무력한 나주지역 정치역량은 혁신은 커녕 기약 없는 공전의 시간속에 뒷걸음질치게하였다는 평가는 흘려듣기에도 민망하다.

광복 70주년(`15년)에 즈음하여 한국은 세계최초로 식민지 국가에서 인구 5천만명의 세계수출 7위, 국민소득 3만불을 달성한 경제강국이 되었다. 국가주도의 중화학 산업정책, 재벌중심 저리 자금공급, 근면 성실한 국민성과 혁신기업가 정신에 힘입어 반도체,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조선기계, 디스플레이, 배터리 산업 등은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무역규모 1조달러를 넘어섰다.

이러한 놀라운 경제성과에 힘입어 한국은 세계 최강국의 모임인 G7에 초대되고 한미일은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핵심국가가 되었다. 금세기 최악의 전쟁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으로 촉발된 군비경쟁에서 한국의 탱크, 잠수함과 전투기는 세계 군수시장에서 전통 무기 수출국을 넘어설 기세다. 과거 일본이 그랬듯 세계 유명관광지에 한국인들이 넘쳐난다.

이러한 성과와 함께 우리는 수많은 정신적 황폐와 물리적 역경을 겪어 왔고 지금도 그 진행중에 있다. OECD국가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 노동현장의 중대산업재해는 최악의 사례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서부터 온 것이며 그로부터 어떤 교훈을 읽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내부성찰은 거의 부재하다.

아이들은 유치원과 청소년기부터 대학입시를 위한 사교육 광풍이라는 극심한 경쟁에 노출된다. 대학입학에서 졸업에 이르기까지 취업전쟁을 준비해야 했고 급기야 순수한 사랑이 전제되는 결혼마저도 돈과 외모로 서열화되어지는 피나는 경쟁을 해야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언제부터인가 지하철 역사에 사설학원과 결혼중계 회사 광고판이 나붙기 시작했고 사교육시장과 성형시장이 전국 주요도시의 핵심상권을 장악하였다. 사교육의 대명사 대치동과 신사동, 압구정동은 자본주의의 불결한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학벌과 외모지상주의 끝판왕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직장내에서도 OECD 최장 근로시간을 보내야 했고 동료간 보이지 않는 실적 전쟁을 치루어야 하는 극심한 경쟁속에 가정도 온전할 리가 없다. 온종일 직장에서 부부가 몰입해야 하고 핵가족화된 세상에서 학원에 내동이쳐진 아이들이 수신제가(修身濟家)할 여유가 있을 수 없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의 초반전에 말려난 결손가정에서 문제아들이 생겨나고, 학교를 졸업하고도 경쟁에서 탈락한 사회적으로 고립된 청소년들도 싸이코패스로 변질된다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언론과 대중은 이러한 일탈자들을 철저히 개인의 부도덕한 인격 파탄자로 몰아가기에 여념이 없다. 이들에게 더 이상 퇴로는 보이지 않는다.

사회적 자기성찰 대신 더욱 가혹한 형별을 논의하기에 바쁘다. 익명의 담벼락에 숨어 우리 사회시스템이 가져온 공범이기를 강력히 거부하고 공동체가 무너지든 말든 각자도생의 사회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 이황과 기대승간의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에 의하면 인간의 본성은 四端(측은히 여기는 마음, 부끄러움, 사양하는 마음, 옳고 그름)과 같이 善한데, 이(理)와 기(氣)가 상호작용하여 칠정(七情) 즉, 희(喜)·노(怒)·애(哀)·구(懼)·애(愛)·오(惡)·욕(慾)이 발동한다고 한다. 맹자의 성선설에 기원한 四端은 인간은 원래 선한 존재인데 주변을 둘러싼 여건에 따라 기쁨이나 분노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우리사회를 병들게 하는 극단적 경쟁과 물신주의 시스템이 四端을 마비시키고 분노의 七情을 폭발시키고 있는 것이다. 퇴계와 고봉 기대승간의 사단칠정론쟁은 맹자의 인간본질에 대한 성찰에 한단계 깊이를 더하면서 당시 韓中日을 비롯한 동남아 지식인들에게까지 확산되었다. 조선 500년을 지탱하게 한 인본주의적 담론은 우리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그리고 더욱 필요하다.

사회시스템의 정점에 정치의 영역이 자리하고 있다. 비록 선거에 의하 자유민주주의를 성공시켰지만 정치시스템은 보수와 진보의 가치를 반영하는 대신 양당제로 굳어진 광장에서 이념투쟁과 권력쟁탈전으로 변질되어 순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공동체의 정신인 공존과 평화(平和)가 파괴된 것이다.

화(和)를 고르게(平) 하는 것이 평화라고 한다. 벼를 의미하는 화(和)는 쌀(禾=米)을 먹는(口) 우리의 삶 그 자체이고, 정치는 우리의 삶이 유무형의 폭력에 외압 당하지 않고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오늘날 정치의 현실은 더욱 치명적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마키야벨리의 직언대로 돈과 권력을 매개로한 복수의 전쟁터로 변질되어 버렸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실 정서는 한마디로 `不安'과 `憤怒`와 `피로감(疲勞感)`이다. 사회적 보장시스템(social network)이 거의 부재한 상황속에서 청장년실업, 노인빈곤과 자살,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격차, 수도권집중, 대중소기업간 임금격차, 자영업자의 몰락 등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더더욱 불안한 것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절망이란 지탱할 미래 희망공간이 없을 상황을 일컫는다. 불안이 치유되지 못할 때 분노로 돌변한다.

그럼에도 정치는 희망과 인간다움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불안과 분노의 원인을 밝히고 그것을 극복할 의지와 희망을 결집해 내는 중심이 바로 정치여야 함은 물론이다. 정치는 환상과 거품에 가려져 있는 성장중심 인간소외의 경제, 사회와 문화의 현상과 구조를 직시하는 것이다.

외형적 공명선거와 다수결에 의한 자유민주주의라 할지라도 깨어있는 유권자의 올바른 선택이 없다면 공자가 말하는 주나라시대의 도덕정치가 더 우월적 시스템이 아니라고 부정할 근거도 없다,

간헐적 단식(間歇的 斷食)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한다고 한다. 식민시대와 전쟁의 곤궁함속에서도 70년대와 80년대의 압축적 경제성장, 90년대의 글로벌 시장경제로의 전환 그리고 2000년대의 거대한 비대면 네트워크 플랫폼 사회로의 전환속에서 앞만 보고 숨가쁘게 달려왔다,

이제 삶의 근본과 인간존엄성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여정과 마주하는 단식(斷食)이 필요한 시점이다. 물신주의에 포획되고 편리함에 길들여진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깨닫는 일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과 불편한 진실을 대면하는 일이다. 신영복 선생의 말씀되로 `욕망과 소유의 거품, 성장에 대한 환상을 청산하고 우리 삶을 그 근본에서 지탱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뼈대를 튼튼히 하고 사람을 키우는 일, 이것이 석과불식(碩果不食)의 교훈이고 희망의 언어이다`

1천년 목사골 나주가 거대 익명의 땅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피로, 불안, 분노를 치유하는 생명의 땅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치유의 방법은 거칠고 강압된 잠재움이 아닌 화해와 용서, 소통과 타협, 진실과 포용 등 민주적 가치를 바로 세워는 데서 시작되어야만 희망의 서곡이 열림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변화된 환경과 민의를 반영한 지혜와 전략의 축척대신 편가르기와 미필적 관성과 타성에 젖어버린 나주지역 정치혁신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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