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과 관련 있는 마을은 어디?

2024년 용의 해에 맞춰 지명 유래 찾기
40여군데로 나주 전지역에 골고루 포진
대부분 지형이 용의 형상에 따라 칭해짐

  • 입력 2024.01.04 16:54
  • 기자명 박철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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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용의 해에 맞춰 나주지역 지명중에서 용과 관련이 있는 곳은 몇 군데나 되고, 어떤 사연으로 용과 관련된 명칭을 얻게 되었을까? 2024년 신년특집으로 용과 관련된 지명은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봤다.

용과 관련되어 지명된 명칭 유래는 대부분 용의 형상을 닮은 지형에 따라 이름지어 졌다. 누워있으면 와룡, 엎드려 있으면 복룡, 일어나는 모양이면 기룡 등이 그 예다. 용이 산과 관련 있으면 용산, 연못과 관련 있으면 용연이다.

남평읍 오계3리는 오룡마을이다. 마을 뒤의 산세가 용의 형상으로 마을을 감싸고 있으며, 마을 앞에는 마치 용이 여의주를 무는 형태의 구슬봉이 있어 오룡이라 불리었다. 백제시대 도자기를 직접 제작하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낚시꾼들이 즐겨찾는 세지면 용궁지
낚시꾼들이 즐겨찾는 세지면 용궁지

세지면 대산리는 본래 지죽면 지역으로 1914년 용산리, 죽산리, 학산리, 월대리, 계양리를 병합하여 대산리로 개칭했다. 이중 용산리는 인근에 용궁지로 불리우는 저수지도 있다. 산과 저수지 모두 용과 관련 있는 지명인데 현재는 대산리로 개칭되면서 용과 관련된 단어가 없어져 버렸고, 저수지만 낚시꾼들 사이에 용궁지로 불리우고 있다.

왕곡면 화정1구 용교마을은 마을의 산세가 용이 사리고 있는 형국으로 이 터에 다리를 놓았다하여 ‘용교’라 불리었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번다리’가 있다.

반남면 청송2구 청용마을은 500년 전에 설립된 마을로서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져서 그 지형 형태가 용의 형체를 닮아서 청룡리라 불리었다. 반남면 덕산1구 용산마을은 마을 뒷산의 산세가 용과 같다하여 용산이라 불리었다. 약 400년 전에 청주한씨가 처음 설립한 마을이다.

공산면에는 3곳이 용과 관련된 유래가 있다. 공산 복용1구 용연마을은 마을 뒷산이 용의 형상이요 마을앞 삼포강이 굽이치면서 흘러가는 곳에 못이 있어 용이 살았다고 하여 용연이라 칭했다. 옛날에 마을 앞 삼포강에 빨래하던 아낙이 이 못에 사는 용이 아낙을 잡아먹고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다.

공산면 화성3구 청룡마을은 마을 뒤쪽에 비산등이라는 조그마한 능선이 있는데 푸른 용이 비산등에 올라갔다고 하여 마을명이 청룡이라 불리었다. 130년 전 김해김씨가 처음 이곳에 정착하였다고 하며 이후 원주이씨가 정착하였으며 주변에 감나무가 많이 자생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공산면 금곡1구 용호동 마을은 500년 전 의령여씨가 이곳에 처음 정착했다고 하며, 마을 당산나무는 이때 심었다고 전한다. 마을 뒷산의 이름이 용산으로 어진 학자가 사는 곳이라 하여 용호동이라 불리었다.

동강면 옥정리의 옥룡산
동강면 옥정리의 옥룡산
동강면 옥정리 복룡마을
동강면 옥정리 복룡마을

동강면 운산1리 청용마을은 청서와 용산이라는 2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는데 청서의 청과 용산의 용을 따사 청용이라 하였다. 동강면 운산2리는 회룡부락과 마현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회룡은 예전에 흥룡으로도 불리었으나 지형이 마치 용이 되돌아오는 형상이라 회룡이라 불리었다. 또한 마을 뒤 용마등에는 용바위가 있는데 산의 지형이 용 형국이다.

동강면 옥정3리 복용마을은 용이 엎드려 도약하려는 찰나의 형국이며, 마을 지명도 용이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 하여 복룡이라 하였다. 동강면 장동5리는 지형이 동편을 향하고 있는 용의 형상이라 용동마을로 불리었다.

다시면도 용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유래는 있는데 지명에 용자가 빠져 언제 잊혀질지 모르는 유래가 청정리 본촌마을이다.

다시면 청정리 본촌마을은 이조 중기에 수원백씨 백한일이 한양에서 유배되어 본 마을에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지명유래는 원래 용문면의 소재지가 있어서 본촌이다. 용문천이 구불구불 돌면서 흘러 마을앞을 흘러갔다는 설도 있다. 용 관련된 사연은 유래로만 남아 있다.

다시면 영동1구 신용마을은 새로 마을을 이루었다는 의미로 새로울 ‘신’자와 용흥의 ‘용’자를 합해 신용마을이 됐다. 가흥리 용흥마을 사람들이 새롭게 마을을 만들었다.

다시면 월태5구 영룡마을은 나주나씨 나천기가 1560년경에 나주에 살다가 이곳으로 와서 정착하면서 형성되었다. 처음에는 영하촌이라 하였고, 그 후 영안마을과 용계마을이 합쳐 영룡마을로 불리었다. 일제 강점기에 영계, 광복후에는 다시 영룡이라 불리었다.

다시면 가흥2구 신흥마을(용흥)은 원래 신기마을과 용흥마을이 통합되면서 용흥마을로 불리우다, 1968년 신기마을의 ‘신’자와 용흥마을의 ‘흥’자를 취해 신흥마을이 되었다. 마을에서는 대박산이 용이 머리에 해당되어 용이 일어나는 형국이라 용흥마을이 되었다.

문평면 대도2구는 대장마을, 용소마을, 소사마을로 이뤄져 있다. 그 중 용소마을은 용사촌이라고 불리우는 용산과 바실이라고 불리우는 소사가 합해져서 이루어진 마을이다. 문평면 산호3구 용호마을은 마을 주위 산맥이 용이 누워있는 형상이며 또한 방죽이 있어 용호마을이라 불리었다.

문평면 오룡리 백룡마을
문평면 오룡리 백룡마을

문평면 오룡1구 백룡마을과 복룡마을은 백룡산 아래에 위치한 마을로 산의 이름을 본따 백룡이라 부르며, 백룡산하에 있는 마을로 지세가 용이 엎드려 있는 형상이라서 복룡이라 칭했다.

용과 관련된 지명이 가장 많은 곳이 봉황면과 노안면이다. 회룡, 기룡, 이룡, 용산 등 나주에서 가장 많은 용과 관련된 지역이다.

노안면 금동2구 회룡마을은 삼도 도야 산맥으로부터 산이 용의 형상으로 구불구불 돌아왔다 하여 회룡이라 불리고, 자연마을 황계와 세터를 합한 마을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노안면 학산1구 용산마을은 고려태조 왕건이 후백제로부터 나주를 점거하기 위해 이곳 태매산에 3일간 진을 치고 전쟁을 치뤘다. 이 과정에서 왕건의 군사 중 2명의 잔여병(김해김씨, 인동장씨)이 마을에 거주하기 시작하고 군사가 머물다간 왕조대가 있다하여 용산이라 불리었다. 또한 풍수지리상 황룡부주라는 명당이 있어 이름에 ‘용’를 넣었다는 설이 있다.

노안면 용산리
노안면 용산리
노안면 금동리
노안면 금동리

노안면 안산2구는 마을사람들에 따르면 평산마을은 평평하고 보통높이의 산이 길게 뻗어있어 야산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원래 야산, 신광, 용광이라는 3곳의 지명을 가지고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3곳의 지명을 통합 평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용광이라는 지명이 유래로만 남아있다.

노안면 안산4구 이룡마을은 솟다리, 황삿터, 이룡개 등 3곳의 동리를 통합하여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이룡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풍수지리상 산세가 두 마리의 용이 마을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 이룡이라고 불리었다.

노안 용산1구 기룡마을은 담 너머의 지형이 개의 머리처럼 생겼다하여 마을 입구를 개머리라 불렀으며, 금성산의 줄기에서 뻗어 내려온 마을 뒷산이 기봉하여 용이 일어나는 형국이라는 유래에서 기룡이라고 하였다.

노안면 영평1구 복룡마을은 복룡, 태평, 옥동, 새터를 합하여 복룡이라 칭했다. 예로부터 마을에 부자가 많아서 복이 많은 마을이라 불리었는데 이는 마을에 용이 엎드려 있는 형국 때문이라했다. 노안면 영평3구 용암마을은 마을 주변에 용과 같이 생긴 바위가 있다고 하여 용암이라 불리었고, 또 다른 이야기로는 행정구역 당시 마을 이장의 호가 용암이어서 용암이 마을이름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금천면 오강2리는 연동마을과 용동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용동마을은 지형이 용 형태로 되어 있어 용동이라 하였다. 문헌상 마을의 이름이 처음 나온 곳은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으로 용동리라는 지명이 나온다.

금천면 원곡3구 미곡마을도 용과 관련이 있다. 미곡마을 유래를 보면 금천면은 용 형국이고 미곡은 용꼬리형국이라고 하여 이름을 미곡이라 불리었다. 용과 관련된 일화가 유래에만 나오고 이름에는 나오지 않은 경우다.

덕룡산 깃대봉
덕룡산 깃대봉
덕룡산 불회사 표지판
덕룡산 불회사 표지판

봉황면도 용과 관련된 지역이 많은 지역이다. 덕룡산의 창룡 출현골은 용이 출현한다는 곳으로 풍수지리상 전국 3대 명당에 속한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용의 가피를 입은 임란 이후부터 덕룡산이라 불리었다. 행정명칭에도 용곡리, 용전리, 황용리 등 노안면과 같이 용관련 명칭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봉황면 용곡리는 주변에 용제산이 있어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용곡2구 용정마을은 용제산 줄기에서 뻗어내린 언덕에 형성된 마을이다. 본래 남평군에 속한 죽곡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용정과 월곡의 이름을 따사 용곡이라 불리었다.

봉황면 용곡리
봉황면 용곡리
봉황면 황용마을
봉황면 황용마을

봉황면 용전리 용두마을은 마을 뒷산 지형이 미처 용이 되지 못한 용머리 형상이라 하여 용두가 되었다. 다른 설로는 목마른 용이 구슬을 가지고 노는 지형이라 하여 예부터 명당자리라고도 불리었다.

봉황면 만봉리 용반마을은 마을 뒷산이 용의 형국이며, 사두혈(뱀머리혈)이라 하여 마을 이름이 이에 연휴했으며, 정약용이 강진 만덕산으로 유배가던 중 이곳에서 쉬었다하여 만봉이라 부르게 됐다. 봉황면 덕곡리 덕룡마을은 마을 앞 산이 용과 같은 형상을 한 덕룡산 아래 마을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봉황면 황용리는 신황마을과 와룡마을의 이름을 따서 황용리라 하였다. 지형이 용이 누워있는 형국이라 하여 와룡촌으로도 불리었다. 봉황면 오림리 용강마을은 마을의 노송은 용비늘을 형성하고 있고, 마을 뒤에 쟁기내가 용소와 같다하여 용소촌으로 불리우다 용강마을로 개칭되었다.

송월동 토계리 6통 흥룡마을은 문헌상 1789년 나주목 신촌면 11개 마을중에 흥룡동이 나온다. 1981년 금성시로 승격될 때 송월동의 관할하에 6통으로 흥룡마을이 되었다. 고려2대 왕 혜종과 관련해 흥룡사를 세웠다.

영강동 10통 용두마을은 멀리서 보면 용머리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영산동 12통 용산마을은 함박산의 북쪽 자락에 있는 마을로 풍수 해석으로 산의 기운을 받은 동네라고 용산이라 칭했다. 영산동 13통 용승마을은 함박산의 용이 기운을 돋구어 주기를 소망하는 뜻을 담아 용승으로 새로 지은 동네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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