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공과 늘공의 슬기로운 사회생활

  • 입력 2024.01.22 10:39
  • 기자명 박철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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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공’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시기가 있었다. 경맥동화에 걸린 것처럼 공직사회가 매너리즘에 빠져있거나 철밥통 소리를 들을지언정 복지부동의 자세로 변화와 개혁에 무감각할 때 민간 영역의 새로운 경쟁력을 공직사회에 부여하기 위해 관련 전문가를 임시 채용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어쩌다보니 공무원이 되었다”는 말을 줄여 ‘어공’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어느 자치단체든 어공 채용은 더 많아지고, 영역도 넓어지는 추세다. 그만큼 공직사회가 시대변화에 여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다.

반면 정년이 보장되고, 공개적인 채용과정을 거쳐 공무원이 된 이들을 ‘늘공’이라고 불렀다. 늘 그 자리에 있어서 ‘늘공’인지, 아니면 변화에 둔감하다는 부정적 의미로의 ‘늘공’인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지금은 정년이 보장된 정식 공무원을 ‘어공’의 상대적 용어로 ‘늘공’이라 부른다.

맨 처음 ‘어공’이 언급됐을 때 공직사회에서 극렬하게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마치 자신들의 자리를 뺏기기라도 한 것처럼, 민간 영역의 전문가 임시채용에 적대적 거부감을 드러냈었다. 심지어 ‘어공’이 전문직이 아닌 정무직에 가까운 채용일때는 노조까지 나서서 집단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었다. 정무직은 보통 새로 당선된 단체장이 자신의 측근을 곁에 두기 위해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경우를 말했다.

지금은 민선시대가 세월과 경륜이 쌓이면서 ‘어공’에 대한 공직사회의 거부감이 훨씬 줄어들었다. 채용 인원도 많아졌고, 업무 범위도 넓어졌다. 공직사회가 감당하기 어려운 특별한 전문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해서 채용했다고는 하지만 이를 전부 믿는 시민은 없을 것이다.

보통 ‘어공’들 중에는 새롭게 당선된 단체장과 긴밀한 관계로 인해 채용된 경우가 많다. 게다가 그렇게 채용된 ‘어공’의 담당업무, 또는 직급에 따라 ‘늘공’들의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경우를 우리는 수차례 목도하게 된다. ‘어공’이 단체장과의 관계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어공’의 파워가 정해지고, 그에 반응하는 ‘늘공’들의 대응 태도가 정해진다.

왜 갑자기 ‘어공’과 ‘늘공’ 타령이냐고?

이렇게 ‘어공’과 ‘늘공’에 대해 적나라하게 언급하는 이유는 정작 따로 있다. 지난해 담양군 출장을 통해 담양군 행정이 민간 영역과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 대처해왔는지 취재한 적이 있었다. 대상은 담양군의 모범사례로 널리 알려진 문화재단과 담양군의 상호 시스템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마침 나주도 문화재단을 준비하고 있는 단계이고, 앞으로 만들어질 나주문화재단 역시 관련 전문가를 계약직으로 채용할 가능성이 높아 담양군이 어떻게 대처해왔는지가 취재의 목표였다.

언제가 기사로 작성해 보도할 예정으로 취재수첩 한 귀퉁이에 짱 박아 두었던 아이템을 이번에 내놓게 될 줄을 미처 몰랐다. 당시에 본지가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민간전문가인 ‘어공’과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늘공’의 사례였다. 보통 단체장의 핵심관계자(핵관)로 채용된 ‘어공’에 대해서는 ‘늘공’들은 늘 저자세였다.

단체장의 핵관이라는 이유로 6급 대우 계약직에게 5급 공무원이 저자세로 대하는 경우도 많았다. 시쳇말로 ‘어공’에 대한 ‘늘공’의 슬기로운 사회생활인 셈이다. 담양군의 경우는 담양문화재단 이사장을 5급 대우로 채용했다. 일명 과장급이다. 그렇다면 보통의 경우 문화재단 사무장 자리는 ‘늘공’ 6급을 발령낸다. 5급 대우의 ‘어공’을 실무적으로 보좌하라는 의미다.

하지만 담양군은 나중에 문화재단 사무장에 5급 공무원을 배정했었다고 한다. ‘어공’인 재단 이사장이 5급 대우인데 사무장을 5급으로 발령낸 셈이다. 그에 대해 담양군 관계자는 ‘어공’인 이사장에 대해 필요에 따라서는 견제가 필요해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전했다. ‘어공’인 이사장이 직급까지 높으면 ‘늘공’인 사무장이 제대로 말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적인 문제가 있어서라는 의미다.

이사장을 보좌해야 할 사무장이 같은 5급이라 이전보다는 균형이나 견제가 훨씬 수월해졌다는 담양군 관계자의 말이 매우 설득력 있게 들렸다. 보통 ‘어공’이 단체장의 핵관에다가 직급까지 높으면 실무자인 ‘늘공’이 수동적으로 대처하고 만에 하나 잘못된 행정절차가 진행되더라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당시 담양군의 사례를 취재하는데 대상자가 고향분이라 더욱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나주 세지면이 고향인 담양군의 나숙자 과장. 과장급이면서 보통 6급이 담당했던 문화재단 사무장 자리를 마다하지 않고 가서 묵묵히 일했던 나숙자 과장은 담양군의 사례를 이렇게 설명한다.

나주에도 문화재단이 만들어지면 문화재단에 일괄적인 사업비 배정 방식은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화재단은 매 시기 사업이 필요한 때에 그때그때 담당 부서에 필요에 따라 사업비가 배정되고 결제, 관리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가능하면 민간 영역과 행정 영역이 슬기롭게 공존하기 위해서는 ‘어공’과 ‘늘공’이 같은 직급으로 한 부서에 배정되어 균형과 견제를 갖추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문화재단을 준비하고 있는 나주시로서는 참고할 만한 대목이다.

본인의 의지와 다르게 실명을 언급한 것에 대해서는 언젠가 담양군을 방문해 나숙자 과장에게 사죄할 일이다. 날씨가 풀리면 관심 있는 시의원분들과 함께 담양군을 재방문했으면 한다. 단체장의 든든한 뒷 배경을 무기로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어공’들의 완장질에 원칙과 절차를 들이밀며 당당하게 대처하는 ‘늘공’들이 많아져야 하지 않겠는가. 나주시에서라도 ‘늘공’들의 슬기로운 사회생활을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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