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성주부의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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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5.10.21 14:41
  • 기자명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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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와 쌀



파랗게 높디높은 가을 하늘 때문일까?

들판의 고개 숙인 벼들은 유난히 노랗고, 가을을 수확하는 농부의 손놀림은 너무도 바쁘고 빨라 빨갛게 물들었다.

옛날 옛적 이즈음엔 농악소리 요란하게 풍년을 노래하고, 청춘 남녀는 이 나락 팔아 시집가고, 장가간다며 설레였었는데 이즈음 농촌은 한 숨으로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진다.

세계화의 폭풍우가 온다온다 하였지만 이렇게 하루아침에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해일과 지진일 줄은 몰랐다.

나락 한 움쿰 쥐어보면 묵직한 것이 유난히 병도 많고, 막바지 멸구 피해도 잘 이겨내었는데 대한민국에서는 돈과 바꿔주지 않는다.

농부들도 이 나락을 팔아야 병원도 가고, 아들 딸 학비도 주고 손주 놈 과자도 사줄 수 있다.

그런데 일년 내내 땀흘리고 허리 굽혀 일한 수확물- 이 나락 - 대접이 말이 아니다.

그런데 세상은 시침을 뚝 떼고 있다.

쌀 협상 안을 통과 시켜야 한다며 정치인들은 오늘도 호시 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농민의 아픔, 이 민족의 생명 줄엔 관심이 없고 오직 세계화에만 관심 집중이다.

며칠 전엔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중국산 김치에 납 성분이 기준량보다 많다는 보도는 도시민들의 밥상을 한 판에 뒤집어 놓았다.

그러면서 올 겨울엔 집에서 김장을 한다고 하고, 급기야 음식점들은 중국산 김치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을 붙여 놓으며 호들갑이다. 그런데 정말 몰랐을까?

편하려고 선택한 것, 돈으로만 해결 하려한 밥상의 반란을......

배추 값이 폭등이라는 보도는 나를 더 많이 씁쓸하게 한다.

한 포기에 천 사백 원 이라며 너무 비싸다고 인터뷰한다. 정말 비싼 것일까?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작년 8월의 뜨거운 태양아래서 옆집 할머니와 허리 굽혀 심고 시 뻘건 황토 속에서 미끈미끈하게 잘 자란 무들을 하나도 팔지 못하고 갈아엎었던 일을......

싸디 싼 중국산 농산물에 우리 밥상 다 내어 주고 우리 농민 빚더미에 다 몰아 놓고 이제서야 우리 농산물이 안전하다고 찾으니 농부들 다 망하고 난 뒤에 누가 농사지어 배추가 충분하겠는가?

무가 충분할 리 없다.

고추가 충분할 리 없다. 마늘이 충분할 리 없다.

나는 정말 걱정한다. 내가 이 농촌에서 살아 남을 수 있을까도 걱정이지만 그보다 우리의 소중한 먹을거리-밥과 김치가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우리 농부의 손으로 생산될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쌀값이 기본 생산비를 밑돈지도 여러 해 되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기름 값 올랐다며 농기계 삯 오르고, 농약 값 오르고, 비료값 오르고 그런데 쌀값은 너무 많이 떨어졌다.

농부는 정말 땅 파서 장사하다 망했다.

정부는 말한다 떨어진 쌀값만큼 정부에서 대신 지급 해준다며 복잡한 수학 공식을 들이대지만 농부가 머리 모아 풀어 보았더니 답은 0원이다.

내년 국민 일인당 부담 세금이 3백 오십 만 원이란다.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움직이는 나라, 이 나라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 그리고 이 땅의 근본을 지켜주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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